본문 바로가기
일본문학

무라카미 하루키: 양을 쫓는 모험 줄거리 (상) - 1/10

by SpiderM 2024. 4. 21.
반응형

수요일 오후의 피크닉

 

신문을 보고 우연히 그녀의 죽음을 알게 된 친구가 전화로 내게 그 소식을 알려주었다. 그가 천천히 읽어준 조간신문의 일단 기사는 꽤 평범한 내용이었다. 대학을 갓 나온 풋내기 기자가연습 삼아 쓴 것 같은 서툰 문장이었다.

 

양을 쫓는 모험

 


몇 월 며칠, 어딘가의 길모퉁이에서 누군가가 운전하는 트럭에 사람이 치였다. 

 

그 사고를 낸 누군가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조사 중이다.

그 친구가 읽어준 기사는 잡지의 속표지에 실려 있는 짧은 시처럼 들리기도 했다.

"장례식은 어디서 할 것 같아?" 하고 나는 물어보았다.

"글쎄, 모르지”라고 그는 말했다. “그런데 도대체 그 애한테 집 같은 게 있었을까?"

물론 그녀에게도 집은 있었다.

나는 그날 당장 경찰에 전화를 걸어 그녀의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아낸 후에 그녀의 집에 전화를 걸어 장례식 일정을 물어보았다. 

 

누군가 말했듯이 수고만 아끼지 않는다면 웬만한 일은 곧 알 수 있게 마련이다.

그녀의 집은 예전부터 서민들이 모여 사는 번화한 거리에 있었다. 

 

나는 도쿄가 상세히 그려진 구분 지도를 펴놓고, 그녀의집 번지에 빨간 볼펜으로 표시를 했다. 

 

지도에서 본 그곳은 정말 서민적인 거리였다. 

 

지하철과 국철, 그리고 노선버스가 균형을 잃은 거미줄처럼 뒤얽히고, 서로 겹치고, 개천이 몇 줄기 흐르고 있어 다닥다닥 붙은 길들이 멜론 껍질의 주름처럼 지표에 달라붙어 있었다.

장례식 날, 나는 와세다에서 노면열차를 탔다. 

 

종점과 가까운역에서 내려 지도를 펼쳐보았지만, 지도는 지구의 정도밖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 바람에 그녀의 집에 도착할 때까지 몇 번이나 담배를 사며 길을 물어야만 했다.

그녀의 집은 갈색 판자로 울타리를 친 낡은 목조 건물이었다.

문 안으로 들어서자, 왼쪽에 조금은 쓸모가 있을 법한 좁은 뜰이 있었다.

 

뜰 한구석에는 못 쓰게 된 도자기 화로가 팽개쳐져 있었고, 그 화로 속에는 15센티미터나 빗물이 고여 있었다.

 

뜰의 흙은 검고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녀가 열여섯 살 때 집을 뛰쳐나간 후 소식을 끊었던 탓도있어, 장례식은 일가친척들만 모여 조촐하게 치러졌다. 

 

장례식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 많은 친척이고, 서른을 갓 넘은 그녀의 오빠 같기도 하고 형부 같기도 한 사람이 장례식을 이끌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오십대 중반으로 왜소한 편이었는데, 검은양복의 소매에 상장을 두르고 문 옆에 선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의 모습은 마치 홍수가 휩쓸고 간 직후의 아스팔트 도로를 연상케 했다.

내가 돌아올 때 말없이 고개를 숙이자, 그도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내가 처음 그녀를 만난 것은 1969년 가을로 나는 스무 살, 그녀는 열일곱 살이었다. 

 

대학 근처에 작은 다방이 있었는데 나는 자주 그곳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그저 그런 곳이었지만, 거기에가면 하드록을 들으면서 아주 맛없는 커피를 마실 수는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앉아, 테이블에 팔꿈치를 괴고 책읽기에 빠져 있었다. 

 

치열교정기처럼 생긴 안경을 끼고 있었고, 손은 뼈가 앙상했는데, 어딘지 모르게 그녀에게는 친근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었다. 

 

그녀의 커피는 항상 식어 있었고, 재떨이에는 언제나 꽁초가 수북했다. 책의 제목만 바뀌었다.

 

어떤때는 미키 스필레인이었고, 어떤 때는 오에 겐자부로였으며, 또 어떤 때에는 긴즈버그 시집이었다.

 

요컨대 책이기만 하면 뭐든 상관없었다.

 

그곳에 드나드는 학생들은 그녀에게 책을 빌려주었고, 그녀는 그것을 옥수수라도 갉아먹듯이 닥치는 대로 읽어치웠다.

 

그때는 책을 빌려주고 싶어 하는 녀석들만 우글대던 시절이었으므로, 그녀는 한 번도 책이 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어즈, 스톤스, 버즈, 딥 퍼플, 무디 블루스, 그런 시절이기도 했다. 

 

공기에는 왠지 모르게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조금만 힘을 줘걷어차기만 해도 웬만한 것은 맥없이 무너져내릴 것만 같았다.

우리는 싸구려 위스키를 마시고, 그다지 신통치 않은 섹스를하고, 결론 없는 이야기를 하고, 책을 빌려주고 빌리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엉망이었던 1960년대도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바야흐로 막을 내리려 하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잊어버렸다.

사망 기사의 스크랩을 다시 한 번 끄집어내어 생각해낼 수도 있지만, 이제 와서 이름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잊어버렸다. 그뿐이다.

옛날 친구들을 만나면 간혹 그녀 이야기가 나올 때가 있다.그들도 역시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왜, 옛날에말이야, 누구하고나 자는 애 있었잖아. 이름이 뭐더라, 생각이잘 안 나는군. 

 

나도 몇 번 같이 잤는데 지금은 어떻게 지낼까,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묘할 거야.

-옛날, 어느 곳에, 누구하고도 자는 여자애가 있었다.그것이 그녀의 이름이다.

물론 엄밀하게 정의를 내린다면, 그녀가 누구하고나 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그녀 나름대로의 기준이 존재했을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바라보면, 그녀는 대부분의 남자와 잤다.

나는 꼭 한 번 순수한 호기심에서 그녀에게 그 기준에 대해 물어본 적 있다.

"글쎄." 그녀는 30초가량 생각에 잠겼다. "물론 누구라도 상관없는 건 아니지. 싫다고 느낄 때도 있으니까. 

 

그렇긴 하지만 결국 난 여러 종류의 사람을 알고 싶어 하는 건지도 몰라. 

 

아니면, 내게 있어서 이 세상이 이루어지는 방식 같은, 뭐 그런 걸 말이야

"함께 자는 것으로?”

“응.”

이번에는 내가 생각에 잠길 차례였다.

"그래서… 그래서 조금은 알았어?"

 

"조금은" 하고 그녀는 말했다.

1969년 겨울부터 1970년 여름에 걸쳐서, 그녀와는 거의 얼굴을 마주치지 않았다.

 

대학은 휴교를 되풀이하고 있었고, 나는 나대로 그것과는 별도로 사소한 개인적인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

1970년 가을에 내가 그곳을 찾았을 때, 이미 손님들은 완전히 바뀌어 아는 얼굴이라고는 그녀 한 사람 정도였다. 여전히 하드록은 울리고 있었지만, 예전처럼 긴장감이 감돌지는 않았다. 

 

오로지 그녀와 맛없는 커피만이 1년 전 그대로였다. 나는 그녀의 맞은편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옛날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의 대부분은 대학을 그만두었다. 한 사람은 자살했고, 한사람은 행방을 감추었다. 그런 이야기였다.

“1년 동안 뭐하며 지냈어?"라고 그녀는 내게

"여러 가지지, 뭐”라고 나는 말했다.

"조금은 현명해졌어?"

물었다.

"조금은."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그녀와 잤다.

나는 그녀의 성장 과정에 대해 자세히는 모른다. 누가 가르쳐주었던 것 같기도 하고, 침대에서 그녀의 입을 통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에 아버지와 크게 싸우고 집을(내친김에 고등학교도) 뛰쳐나왔다는 이야기였다. 

 

도대체 어디에 살고 있는지, 어떻게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그녀는 하루 종일 록 음악이 흐르는 다방의 의자에 앉아서 몇잔이고 커피를 마시며, 끝없이 담배를 피워대고 책장을 넘기면서 커피값과 담뱃값(당시의 우리에게는 상당한 금액이었다)을 내줄 상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는데, 대개의 경우 그 상대와 잤다.

그것이 내가 그녀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전부였다.

그해 가을부터 이듬해 봄에 걸쳐서 일주일에 한 번, 화요일 밤에 그녀는 미타카 변두리에 있는 내 아파트를 찾아왔다.

 

그녀는 내가 만든 간단한 저녁을 먹고, 재떨이를 가득 채우고, FEN의 록 프로그램을 크게 틀어놓고 들으면서 몸을 섞었다.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면 잡목림을 산책하면서 ICU의 캠퍼스까지걸어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오후에는 라운지에서연한 커피를 마시고, 날씨가 좋으면 캠퍼스의 잔디밭에 누워 뒹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요일의 피크닉, 이라고 그녀는 그렇게 불렀다.

"여기에 올 때마다, 진짜 피크닉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

"진짜 피크닉?"

"응. 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잔디밭이 있고, 사람들은 행복해보이고.......”

그녀는 잔디 위에 앉아 몇 개비나 성냥을 버리면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해가 뜨고 다시 지고, 사람들이 왔다가 가고, 공기처럼 시간이 흘러가잖아. 왠지 피크닉 같지 않아?"

그때 나는 스물두 살을 몇 주일 앞둔 스물한 살이었다. 

 

당분간 대학을 졸업할 가망은 없고, 그렇다고 해서 대학을 그만둘만한 확실한 이유도 없을 때였다. 

 

기묘하게 서로 얽혀 있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나는 몇 달 동안이나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있었다.

온 세상은 끊임없이 움직이는데, 나만이 같은 곳에 머물러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1970년 가을에는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이 서글펐고, 그리고 모든 것이 빠르게 바래가는 것만 같았다.

 

태양의 햇살과 풀 냄새, 그리고 작은 빗소리조차도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몇 번이나 야간열차를 탄 꿈을 꾸었다. 언제나 똑같은 꿈이었다.

 

담배 연기와 화장실 냄새와 사람들의 훈김으로 후텁지근한 야간열차였다.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혼잡하고, 좌석에는 오래전에 누군가가 토해놓은 것이 말라붙어 있었다.

 

나는 참다 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의 역에 내렸다.

 

그곳은 인가의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 역무원의 모습조차도 보이지 않는 황량한 고장이었다.

 

시계도 열차 시간표도 아무것도 없는,그런 꿈이었다.

그런 시기에, 몇 번인가 고통스럽게 그녀를 만났던 것 같다.그녀를 어떤 식으로 대했는지, 지금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나 자신에게 했던 정도로 그녀를 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쨌든, 그녀는 내 행동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아니면(극단적으로 말한다면), 나의 행동을 꽤 즐기고 있었다. 왜인지는 모른다. 

 

결국 그녀가 내게서 찾던 것은 다정함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지금도 기분이 묘해진다. 

 

어쩌다 공중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벽에 손을 짚은 것처럼 슬퍼진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