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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기담

두려움 없는 사랑 남자가 사랑할 때 남색 대감 이하라 사이카구

by SpiderM 2024.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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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시대의 작가인 이하라 사이카구가 쓴 <남색 대감>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원래 일본의 동성애는 헤이안 시대에 일부 귀족들 (사족) 사이에서만 유행하였습니다. 하지만 오랜 내전을 겪으면서 동료 혹은 부하와 지하관 사이의 끈끈한 관계가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무사들 사이에서 퍼져 나갔습니다. 내전이 끝나서도 에도 시대에 '슈도'라고 불리면서 상류층의 관심이 되었습니다. 이런 풍습들은 가부키와 조리루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전파되면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 아카시 (일본 효고현에 있는 도시)의 주군을 모시는 사콘이라는 이름의 사무라이가 갑작스러운 비를 피해 길가의 버드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그런 사콘의 눈에 멀리서 우산을 들고 비를 맞고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햇볕에 그을리지 않은 흰색 순수한 미소를 띈 소년이었다.

 

"비 때문에 고생을 하시는 것 같은데 우산을 빌려드릴까요?"

 

"그 고마운 일이군."

 

사콘의 소년에게 감사를 말은 전하자, 그 소년은 우산을 하나 사콘의 종자에게 건냈다.

 

'너는 왜 우산을 들고 다니면서 비를 맞고 다니느냐?"

 

그 물음에 소년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 대답했다.

 

"아버지는 나카사카 슈젠의 아들 고린이라고 합니다. 본래 아버지는 주군을 모시던 사무라이이셨지만 잘못을 저질러 고향으로 쫓겨가는 길에 아버지는 배 위에서 홧병으로 세상을 등지셨습니다."

 

소년은 말을 이었다.

 

"사무라이로서 받고 살았던 자가 박탈을 당하면 세상 어디에도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었죠. 장례를 치르면서 모든 돈을 다 써버린 어머니와 이 마을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우산을 만드시고 제가 팔러 다니고 있습니다."

 

그 사연을 들은 사콘은 종자에게 말해 소년의 우산 모두를 사게 하고 충분한 돈을 주었다. 소년은 뛸 듯이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남자의-사랑-고린
남자의 순정 - 고린

 

 

아카시로 돌아온 사콘은 이야기를 주군에게 전했고, 주군을 그 아이를 데려오라고 했다. 주군의 부름을 받은 고린과 그 어머니는 아카시로 와서 주군을 알현한다.

 

아직 앞머리를 밀지 않은 미소년과 30대를 넘어선 주군의 만남은 별 다른 일 없이 끝나고 말았지만, 중요한 것은 미소년의 맑은 눈으로 인하여 주군이 아이를 사랑하게 되고 만 것이었다.

 

그때부터 주군과 고린은 '슈도' 관계가 되어버렸다.

 

주군은 고린의 방을 따로 마련해 주고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바로 고린의 성격이었다. 직설적이면서 솔직한 성격의 그는 주군의 총애를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고, 비위도 맞춰주지도 않았다.

 

기분이 상하지만 고린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주군은 모른척하고 넘어가 준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다른 이었으면 목이 달아나도 몇 백번은 날아갈 이유였지만 말이다.


행복할 것 같았던 둘이 사이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것은 또 다른 남자 때문이었다. 주군이 그랬으면 고린이 쫓겨나면 그만인데 겂 도 없이 고린이 다른 남다를 사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남자는 바로 주군을 모시는 사무라이의 아들 소하치로로 고린과 동갑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성에 왔다가 고린의 여자 같은 모습에 반하고 만 것이었다.

 

그래서 몰래 와카(일본의 전통적인 시)를 써서 자신을 담아 고린에게 보냈다.

 

안 그래도 나이 많고 자신에게 집착하는 주군에게 싫증을 느끼고 있던 고린은 소하치로의 와카를 보고 주군 몰래 편지 왕래가 이어지고 사랑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겁 없는 짓이자 자신과 어머니를 구해준 은인을 배신한 고린 그리고 소하치로.


소하치로를 만나고 싶었던 고린은 대담하게 꾀를 냈다. 어머니에게 드릴 선물을 보내기 위한 상자를 들여오면서 그 안에 소이치로를 숨겨 들어온 것이었다.

 

그리고선 밥을 먹고 배가 갑자기 아프다고 혼자 방에서 쉬겠다고 하고 소하치로와 몸을 섞으며 깊은 밤을 보냈다. 그리고 둘은 서로를 지켜주고 평생을 함께 하겠다고 맹세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사실은 주군에게 빠르게 전달되고, 의심을 거두지 못한 주군은 몰래 고린의 방으로 조용히 다가가 소리를 들어 보았다.

 

몸을 섞는 소리와 고린이 다른 이와 벌거벗은 채 그것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분노한 주군은 문을 열고 못 볼 것을 보고 만다.

 

그 순간 재빨리 한 남자가 창문으로 몸을 날려 도망쳤고, 분노에 찬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고린을 노려 보았다. 

 

하지만 더 기가 찬 것은 고린의 말이었다.

 

"제 방에는 저 밖에 없었지 않습니까? 절 못 믿어시는 겁니까?"

 

주군 혼자서 봤다고 네가 잘 못 본 것 아니냐는 건방지고 무례한 태도에 몸을 떨고 있는 주군에게 사무라이 가나이 신페가 가까이 와 말했다.

 

"정원을 가로질러 이곳으로 오다가 담장을 넘는 자의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사랑을 배신당했다고 생각한 주군의 노여움은 하늘을 찔렀고 당장 고문을 해서 그놈을 잡아내라고 명령했다. 평소 주군의 사랑을 독차지한 고린을 질시하던 모든 사무라이들이 기회는 이 때다 하며 가혹한 형벌을 고린에게 가한다.

 

며칠 뒤 고린은 주군 앞에 끌려 나간다. 그러나 그의 몸은 이미 반 송장이었다.

 

주군은 마사무네(전설적인 칼 장인 마사무네가 만든 일본도로 명검의 상징)를 든 자세로 고린에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네 방에 있던 그 자의 이름은 무엇이냐?"

 

"평소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저를 지켜주시고 아껴 준다 하시더니 질투에 눈이 머시다니... 주군께서 주셨던 사랑이 있으니 저는 어떤 벌도 달게 받겠나이다. 하나, 그자의 이름은 제 가슴속에 묻겠나이다."

 

그 순간 고린의 왼 손목이 날아갔다. 피가 튀고 고린의 몸은 앞으로 숙여졌다.

 

"대답하라. 하지 않으면 목을 치겠다."

 

그런데 다음 대답이 주군의 이성을 잃게 만들어 버리게 만들었다.

 

"이 손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더듬었습니다."

 

고함을 지르며 오른쪽 손목을 날려 버린 주군.

 

"벚꽃처럼 짧은 인생이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꿈같은 시간을 보냈으니 더 이상 한은 없나이다."

 

말을 마친 고린은 목을 치게 쉽게 몸을 앞으로 내밀고 목을 내놓았다.

 

순간 고린의 목은 하늘로 올랐다 땅으로 떨어지고 고린의 눈에는 사람들의 발이 보이고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이 모습을 본 사무라이들은 고린의 사내다운 기개에 감탄을 하고 그를 추모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을 바쳐 당당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그들을 감탄하게 했다.

 

피 묻은 마사무네를 든 주군은 고린을 묘복사에 안치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그 사나이가 누굴까 하는 소문이 돌고 흥미로워했다.

 

하지만 도망을 친 소하치로는 겁을 낸 것이 아니라 복수를 노리고 있었다. 다음 달 성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한 그는 애인 고린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가나이 신페의 양 손목을 자르고 목을 베서 복수에 성공하게 된다.

 

드리곤 종적을 감추어 버린다. 그러나 모든 이들은 정체를 알게 되고 소하치로가 고린의 애인임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과연 서로가 아끼고 사랑한 게 틀림없다고 감탄했다.

 

한편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성에서 쫓겨나 묘복사로 들어가 아들의 애인이 원수를 갚았다는 소문을 듣고 자신의 애통한 심정을 유서로 남기고 자결했다.

 


지금까지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애틋한 사랑과 처절한 복수, 그것을 마무리 짓는 어머니의 슬픈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가고 한 동안 묘복사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로 끝입니다.

 

참 이해하기가 쉬운 것 같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바람피운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왜 이 이야기가 기감으로 남겨지게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니 일본의 사고방식이 정답인 것 같습니다. 수용하기 어려둔 생활 습관과 제도, 참 다양하다고 생각합니다.

 

SpoderM

 

예고) 다음 시간엔 동성애와 관련된 일본 전통 연극 가부키에 대해 알려드리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일본의 무형문화재 가부키는 동성애와 많은 관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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