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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기담

미야베 미유키 <축제음악>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중에서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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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 <축제음악> 

 

 

모시치는 지극히 소탈한 성격으로, 오토시도 그런 점을 좋아했다. 오토시의 아버지는 모시치의 바로 아래 동생에 해당하는데 겨우 세 살이 차이 나는 형제로, 어떻게 이렇게 성격이 다른지 신기하게 생각될 만큼 말을 딱 부러지게 하지 않는 사람이다.

"아버지, 오늘은 덥네요"라는 정도의 말에도 "글쎄, 그런가? 해가 좀더 높아지지 않으면 알 수 없지"라고 대답한다.

모시치는 시원시원해서 기분이 좋다. 오토시는 내심 자신은 아버지보다 큰아버지를 닮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본래는 네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오늘 대화를 얼핏들어 버렸으니 이야기해 주지 않을 수도 없구나. 오히려 신경이 쓰일 테니. 하지만 다른 데 가서 이야기하면 안 된다.”

모시치는 그렇게 서두를 두고 이야기했다.

"그 처녀의 이름은 오요시, 나이는 열여덟이니 너와 같겠구나.마쓰쿠라초에 있는 목욕탕 주인의 딸로, 언니가 둘 있다. 이 언니들이 미모가 뛰어나서 말이야. 둘 다 좋은 집에 시집을 가서 벌써 아이도 있어."

“어머, 그럼 막내인 오요시 씨가 목욕탕을 물려받게 되나요?"

오토시가 묻자 모시치는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목욕탕 주인 부부는 그럴 생각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오요시에게는 좋은 남편을 바랄 수 없을 거라면서."

오토시는 오요시의 흐리멍덩한 얼굴 생김새를 떠올리고 쿡 웃었다.

“그러네요. 상속을 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모시치는 나물을 입에 넣으며 씁쓸한 얼굴을 했다.

“웃지 마라. 안 그러면 너도 오요시 손에 죽게 될

거야."

그 말투가 우스워서 오토시는 더욱 웃었다.

“어머, 하지만 그 아가씨가 한 말은 전부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인 거잖아요. 정말로 살인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는걸요."

“그야 그렇다만, 설령 말뿐이라 해도 살해되어서 기분이 좋을 리는 없지 않느냐. 그래서 오요시에게 그런 말을 하고 싶어졌을 때는우리 집에 오도록 하라고 타일러 둔 거다. 길거리에서 그런 말을 지껄였다간 큰일이지."

모시치가 지금처럼 손을 쓰기 이전에는, 오요시는 그녀가 '죽였다'고 생각하고 있는 여자들에 대해서 마음 내킬 때 마음 내키는 곳에서 떠들고 다녔다. 당연히 팔팔하게 살아 있으면서도 오요시의 손에 '살해당한' 처녀나 가족들은 불쾌해한다. 화를 낸다.

“그럼 그 오요시 씨는 머리가 이상한 거로군요."

“쉽게 말하자면 그런데 "

오요시도 본래는 그렇지 않았다. '언니들과 달리 예쁘지는 않지만 마음씨가 곱고 재치가 있다'는 평을 받는 처녀였다. 그런데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지금처럼 되고 만 것은, 반년쯤 전의 일이라고 한다.

"어째서 그런 말을 하게 된 걸까요. 사람을 죽였다니

"그걸 모르겠어."

모시치는 고개를 젓는다. 오늘 밤에는 술도 들어가지 않는다. 나중에 오사토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모시치는 오요시를 만난 후면 늘 기운이 조금 없어진다고 한다.


미야베-미유키-축제음악-2

 

오사토는 "자고 가지 그러니?" 하고 권한다.

“게다가 오토시, 너는 큰아버지께 뭔가 할 이야기가 있어서 왔잖아?"

그 말에 오토시는 자신의 걱정거리를 떠올렸다.

“대단한 일은 아니에요" 하고 웃어 보인다. 이곳을 찾아왔을 때는 완전히 낙심해 있었기 때문에 무엇이든 털어놓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머리가 조금 식었다. 마음도 차분해졌다. 말을 골라가며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오토시에게 모시치는 웃음을 지었다.

“뭐, 네 이야기라면 어차피 소키치에 관한 일일 게 뻔하다만."

정곡을 찔린 오토시는 얼굴을 붉혔다. 오토시의 얼굴이 빨개지면 또 큰아버지 부부의 웃음을 자아낼 거라 생각하니 더욱 거북했다.

"오토시, 정말 소키치 씨에게 푹 빠졌구나."

오사토가 상냥하게 말해 주었기 때문에 오토시는 얼굴을 들었다. 겨드랑이 밑에 땀이 났지만 무더운 밤 때문만은 아니었다.

“제가 그렇게 항상 소키치 씨 일로 소란을 피우는 것처럼 보이나요?"

큰아버지 부부는 힐끗 얼굴을 마주 보았다. 오토시가 묘하게 진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소동은 아니지만 네 이야기는 언제나 소키치에 관한 것이라는 게 사실이지. 네 머릿속은 항상 소키치, 소키치이지 않느냐. 이세야의 찹쌀떡처럼."

큰아버지가 끄집어 낸 비유에 오토시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세야라는 것은 혼조에 있는 찹쌀떡 가게로, 그곳의 찹쌀떡은 팥을 뭉친 것 위에 직접 밀가루를 뿌린 게 아닌가 싶을 만큼 껍질이 얇고 소가 꽉 차 있다.

"저랑 소키치 씨를 찹쌀떡 같은 데 비유하지 마세요."

"네 머리가 찹쌀떡이라고 한 거야."

모시치는 하하 하고 웃었다.

“그 소중한 소키치 씨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니?"

소키치는 오토시와 부부가 되기로 약속한 젊은이다. 지금은 후카가와 사루에초의 골목길 안쪽에 있는 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 직업은 소방원. 오토시와는 소꿉친구 사이인데 어릴 때는 종종 진흙투성이가 되어 함께 놀곤 했다.

그 무렵부터 소키치는 손재주가 좋고 몸이 가벼웠다. 올려다보아야 하는 높은 가지의, 그것도 가장 끝 쪽에 매달려 있는 감나무 열매를 훌쩍 따다 오토시에게 던지곤 했다.

소키치가 열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후카가와에 있는 소방원 대장 밑으로 가게 되었을 때, 오토시는 꽤나 울었다. 감나무를 보고는 울고, 말이 없어진 소키치를 바라보고는 울었다. 지금 생각하면 오토시는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장래에 소키치의 색시가 되겠다고 결심했던 것이다.

그래서 어엿한 어른이 된 소키치가 혼조로 돌아와 어머니와 둘이서 살기 시작했을 때 오토시는 금세 그 꿈을 되찾았다. 거친 일을 하고 성정이 격렬한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소키치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잔잔한 봄바다처럼 온화한 얼굴을 한 젊은이가 되어 있었다.

소키치는 남자치고는 몸집이 작다. 오토시와 나란히 서면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얼굴도 작고 이목구비도 아기자기하게 정돈되어 있다. 햇볕에 타지 않는 체질인지 피부도 하얗다.

"너 같은 말괄량이가 그런 얌전한 남자에게 푹 빠지는 걸 보면, 세상이라는 것은 균형이 참 잘 잡혀 있구나."

 


 


오토시의 어머니는 묘하게 감탄한다.

이 혼담을 추진하는 데에는 지장도, 부족함도 무엇 하나 없었다. 그러나 작년 가을에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게 된 순간, 소키치의 어머니가 쓰러졌다. 아마 안심한 것이리라. 겨우 대엿새 정도 앓아누웠다가 어이없게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렇게 되면 혼인은 좀 나중으로 미루는 게 좋겠지."

소키치가 어머니의 상을 치를 때까지 이야기는 뒤로 미뤄지게 되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두 사람의 혼담을 기뻐하던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는 빨리 가정을 꾸리는 게 좋을 것 같지만, 세상에는 이런 일에 까다로운 눈도 있고 반년이나 일 년 정도 늦춘다 해도 금방이야하며 주위 사람들은 오토시를 설득했다.

하지만 그것은 처녀의 마음을 모르는 처사라고, 오토시는 생각하고 있다.

불안하다. 일 년 사이에 다른 누군가가 나타나면 어떻게 될까. 또다른, 혼인을 올릴 수 없는 사정이 생기면 어떡하나. 그런 생각 때문에 잠이 오지 않을 때가 있다.

자신은 괜찮다. 오랫동안 소키치만을 좋아해 왔던 것이다. 마음이 바뀔 리 없다.

하지만 소키치는 어떨까.

본래 별로 말수가 없는 성격의 남자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오토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오토시를 자신의 아내로 맞겠다고 결심했는지, 아니면 적당히 장단을 맞추려는 것인지. 소꿉친구니까 번거로울 일도 없다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면 슬픈 일이다.

그런 때에 만일 누군가 다른 여자가 정말로 소키치를 뒤흔들 수 있는 여자가 나타나고 만다면.

그 생각을 하면 오토시는 가슴 깊은 곳이 저릿저릿해진다. 손이닿지 않는 곳이 가려운 듯, 보이지 않는 곳에 멍이 든 듯, 답답하고도 무력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다. 모시치 큰아버지에게 '너는 대단한 질투의 불덩어리구나'라는 말을 들을 만큼 질투를 하는 까닭은.

"뭐냐, 이번에는 소키치가 예쁜 여자랑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기라도 하더냐?"

놀림을 받고 오토시는 입을 삐죽거렸다.

"그 사람은 그런 바람은 피우지 않아요."

"이거 몰라 뵈었구나. 그럼 뭔데?"

오토시는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말할까…

"싸움이라도 했니?" 하며 오사토가 웃는다.

“그 사람, 요즘 분위기가 이상해요. 왠지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찾고 있다?"

“네. 그것도 여자를 나랑 같이 걷고 있을 때, 스쳐 지나가는 여자를 물끄러미 보고 있을 때가 있거든요. 몇 번이나 있었어요. 얼굴생김새나 머리를 틀어올린 모양이나, 기모노 무늬 따위도 구멍이 뚫릴 만큼 쳐다본다고요. 그런 모습이 제게는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말을 끊고 큰아버지 부부를 올려다보니 두 사람은 극단적으로 다른 표정을 띠고 있었다. 모시치는 실실 웃고, 오사토는 그런 큰아버지를 곁눈질로 노려보고 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오사토였다.

“신경 쓸 것 없다, 오토시, 네 지나친 생각이야."

"그럴까요….”

“그래. 그게 아니면 소키치 씨는 눈이 조금 근시인지도 모르지.”

“여자를 볼 때만 근시인가?"

재미있다는 듯이 말하는 모시치의 등을 오사토가 철썩 때렸다. "오오, 아파라. 여자는 무섭단 말이야."

그날 밤, 모시치는 오토시에게 꼭 자고 가라고 말했다. “나는 지금부터 직무 때문에 잠깐 나가 봐야 한다. 오사토 혼자 있으면 불안할 테고, 너도 이런 시간에 혼자서 돌아가면 위험해. 자고 가야 한다. 알겠지?"

소키치 일로 놀림을 받아 토라져 있던 오토시는 그 말에 약간 거역하는 척을 했다.

“어머, 큰아버지, 오토시라면 요괴가 떼지어 덤벼들어도 괜찮다고 말씀하셨던 게 누구셨지요?"

모시치는 웃지 않았다. 주위에 신경을 쓰는 것처럼 목소리를 떨어뜨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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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내 말도 진지하게 들어다오. 너도 '얼굴 베기'에 대해서는 알고 있을 게 아니냐."

오토시는 금방은 생각나는 게 없어서 모시치의 진지한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어머나" 하며 웃었다.

"알아요. 하지만 그건 이 근처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잖아요. 게다가 이 혼조 후카가와에는 큰아버지가 계시는걸요. 그런 무서운일이 일어나게 하지는 않으실 거지요?"

“나도 그럴 생각이긴 하다만.”

모시치가 말하는 '얼굴 베기'라는 것은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하고 있는 사건이었다. 만월 전후쯤, 밤이 되면 젊은 여자만을 노려면도칼로 얼굴을 베고 다니는 자가 있다.

"이것만은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 달님도 많이 둥글어졌고."

모시치의 말에 오토시는 격자창 너머로 하늘을 불쑥 올려다보았다. 가늘고 길쭉한 달걀 모양의 달이 코앞에 크게 보였다. 달님도이쪽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다고, 오토시는 생각했다.

바로 가까운 곳이니 괜찮을 텐데, 하면서도 결국 오토시는 자고가기로 했다. 오사토와 질투에 대해서 찬찬히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번은 오사토의 위로를 받고 마음을 다잡은 오토시였지만, 그후 얼마 안 되어 일은 더욱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오토시는 소키치가 혼자 살고 있는 뒷골목 집에 자주 드나들곤 한다. 청소나 빨래를 하고 밥을 짓고 물을 길으며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공동 주택에 사는 다른 사람들도 이미 오토시를 소키치의 아내로 취급하고 있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소키치가 돌아왔다. 상량식에서 술을 대접받았다고 한다. 해가 늦게 지는 여름철이지만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오토시는 달려갔다. 그리고 깨달았다.

소키치의 몸에서 가루분 향이 난다.

오토시의 것과는 다르다. 엄청나게 진한 향이다. 값비싼 것인 듯하다. 오토시는 코를 킁킁거리며 순간적으로 소키치를 밀쳐냈다 그때는 이미 뒷머리를 다듬으면서 소키치의 등을 밀어 밖으로 내내는 풍만한 여자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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