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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기담

미야베 미유키의 <두고 가 해자> 3/3-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중에서

by SpiderM 2024.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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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두고 가 해자> 3/3

 

 

등롱 두 개가 흔들리면서 다가온다.  땅바닥을 쓰는 것 같은 그 발소리는 해자 가까이까지 와서 몇 번이나 망설이듯 멈추었다.

미야베-미유키-두고-가-해자-3/3

 

 

“그만 돌아가요." 여자의 목소리.

"아니, 그럴 수는 없어. 어쨌거나 정체를 확인해야지.”

 

남자의 목소리였다

오시즈는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가와고에야의 주인 부부다….'

쇼타가 출입하던, 기쿠가와초에 있는 잡화 도매점의 주인 부부다. 

그 부부가 방금 전까지의 오시즈와 오토요처럼 서로에게 매달리다시피 하며 해자 가장자리에 서 있다.

그때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와고에야."

오시즈는 흠칫하며 가슴에 손을 댔다. 오미쓰는 등롱을 떨어뜨렸다. 불꽃이 타오른다. 갑자기 밝아진 해자 가장자리에서 부부의 얼굴만이 창백하다.

“가와고에야."

다시 한 번 부르는 소리에 기치베에가 엉거주춤하면서도 겨우 목소리를 냈다.

"그래, 우리다."

오미쓰는 기치베에의 등에 숨으려고 하고 기치베에는 오미쓰를앞으로 밀어내려고 한다.

"두고 가." 목소리가 말을 이었다.

"무엇을 두고 가란 말이냐?"

떨고 있는 기치베에에게 목소리는 즉시 대답했다.

"오미쓰."

오미쓰는 비명을 질렀다. 기치베에가 도망치려던 그 목덜미를 붙잡아 도로 끌어당긴다.

“이 사람을 두고 가면 용서해 줄 텐가?"

“내가 아니야, 당신을 죽이게 한 건 내가 아니라고요!”

오미쓰가 소리친다. 오시즈와 오토요는 갈댓잎 그늘에서 얼굴을 마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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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게 했다?" 오토요가 중얼거린다.

오미쓰는 미친 듯이 손을 휘두르면서 계속 소리쳤다.

"당신을 죽인 건 내가 아니야. 이 남자지. 혹시 당신이, 내가 후지하루에게 독을 먹이는 것을 보았을지도 모른다고 했더니, 담이 작은 이 사람은 당신이 파수막에 신고하는 게 아니냐며 마음을 졸......."

오시즈는 눈을 부릅떴다. 후지하루. 

 

모시치 대장과 보리밥집에 왔던, 목에 병이 생겨 한 마디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도키와즈 선생님이다.

“밤에도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없어서, 그래서 근처의 못된 불량배들에게 돈을 쥐어 주고 당신을 죽이게 한 거야. 나는 모르는 일이야. 전부 이 사람이 한 짓이라고!"

오시즈와 오토요가 일어서려고 했을 때,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가와고에야의 부부도 제각기 서로를 밀쳐 내다시피 하며 달아났다. 


그 뒤쪽으로, 두고 가해자 쪽에서 무언가를 씹어 부수는 오독오독 하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이틀쯤 지나, 모시치 대장이 또 오시즈가 일하는 보리밥집에 찾아왔다.

"오늘은 손님으로 온 것이 아닐세. 오시즈 씨를 좀 빌려 가야겠는데."

그렇게 말하고는 오시즈를 근처 감주 가게로 데려갔다.

“가와고에야의 부부가 이제야 죄상을 자백했네."

감주를 한 모금 홀짝이고 나서 모시치는 말을 꺼냈다.

오시즈는 무릎 위에 시선을 떨어뜨린 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고 가 해자에서 그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을 때부터. 뒷일은 대장님께 부탁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날 밤 오미쓰가 평정을 잃고 소리를 지르던 대로, 사람을 고용해 쇼타를 죽이게 한 것은 가와고에야의 기치베에였다.

“기치베에가 도키와즈 선생인 후지하루를 짝사랑하게 된 것이 시작이었지."

후지하루의 목소리는 그 목소리를 들으면 한겨울에 벚나무 꽃봉오리도 피어난다고 할 정도로 교태가 있고 훌륭했다고 한다.

"기치베에 씨로서는 물론 흑심도 있었겠지만, 우선은 후지하루의 목소리에 반해 있었어. 후지하루에게는 남편도 있었고, 기치베에는 그저 가르치는 제자 중 한 명일 뿐 아무 생각도 없었네. 하지만 마누라인 오미쓰가 보기 드물게 투기가 강한 여자였거든. 남편이 후지하루에게 넋이 나가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세."

모시치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게 잘못이었던 거야. 오미쓰는 결국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서, 후지하루의 집 물병에 목구멍을 태워 버리는 약을 몰래 섞어 두었네."

"후지하루 씨는 목에 병이 생겨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된 것이 아니었군요."

대장은 얼굴을 찌푸리며 자신도 목 언저리를 문지르고 나서 말을 계속했다.

"오미쓰는 얄미운 후지하루를 혼내주고 나서 속이 후련하다고 생각했네. 하지만 후지하루의 집에서 몰래 나오는 모습을 자네 남편인 쇼타가 보고 말았어."

쇼타는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게다가 후지하루 본인도 오미쓰의 짓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의 마누라가 투기를 해서 목을 망쳤다는 말은 체면이 있으니 할 수 없었지. 무슨 증거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도 없고 말이야. 언젠가 반드시 이 원한은 갚아주겠노라고 결심하고 우선은 아까도 말했다시피 '병으로 목을 망쳤다'는 것으로 해 두었으니, 가와고에야로서는 쇼타의 의심을 살 일이라곤 전혀 없었네."

"인간이란 약한 법이지. 스스로에게 꺼림칙한 데가 있다 보니 아무래도 쇼타의 얼굴을 보면 불안했을 걸세. 뭔가 알고 있고, 씩 웃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우리 바깥양반은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오시즈는 당장 말했다. 모시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치베에에게 모든 것을 고백하고, 쇼타를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장사에 지장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부추긴 걸세."

기치베에는 깜짝 놀랐다. 오미쓰가 질투 때문에 저지른 짓이 알려지면 세상 사람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게 된다.

"대장님은 처음부터 그것을 꿰뚫어보고 계셨나요?" 모시치는 머리를 긁적였다.

“쇼타는 남에게 원한을 살 만한 사람이 아니고."

모시치는 '그건 자네가 제일 잘 알고 있겠지'라는 듯이 오시즈를 바라보았다.

"그때 후지하루 사건이 떠올랐네. 후지하루도 쇼타의 단골손님이었기 때문에 아하, 하는 생각이 들더군. 머릿속에서는 그랬지만 어쨌거나 증거는 없었네. 그렇다고 대뜸 가와고에야의 주인 부부를 포박하고 고문을 해서 자백시킬 수도 없고."

우선 오시즈와 가와고에야 주변에서 두고 가 해자에 간기 도령이 나온다는 소문을 퍼뜨린다. 다른 남자의 입으로, 간기 도령은 성불하지 못한 생선 가게 주인이나 어부의 화신이라는 이야기도 퍼뜨린다.

"어머나, 그럼 그때 그 이야기를 꺼낸 사람은 대장님의 동료였나요?”

"그렇다네?"

다음은 발자국을 조작한다.

"정말로 물갈퀴가 있는 발자국이었어요."

모시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웃었다.

"잘 만들었지? 뭐, 료고쿠에 있는 극장에 부탁해서 갓파 발이라든가 하는 물건을 빌렸네."

밤에 남들의 눈을 피해 오시즈의 눈이 닿는 곳과 가와고에야 주변에 발자국을 내 둔다. 

 

오시즈는 이상하게 여기고 혹시 쇼타가 아닌가 생각했지만 가와고에야의 부부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리고 모시치는 눈초리에 주름을 지으며 미소를 띠었다.

“오시즈. 자네, 그런 시간에 우오타로를 안고 혼자서 용케 두고 가 해자까지 나갔군. 그만한 용기가 있다면 앞으로도 훌륭하게 살아갈 수 있을 테지."

“걱정할 것은 없네. 쇼타는 틀림없이 간기 도령 같은 것이 되었을 리는 없네."

"하지만 그 목소리는? 그것도 대장님의 연극이었나요?"

'두고 가'라고 부르던 목소리는 도저히 인간의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오시즈는 앗 하며 생각했다.

'후지하루 씨다.'

후지하루였다. 그래서 오시즈의 이름도 불렀던 것이다.

"대장님......."

모시치는 딴청을 피우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후지하루는 길이 잘 든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지…. 이빨이 튼튼한 고양이일세."

오독오독 하는 소리의 정체도 그것이었다.



그날 해질녘, 오시즈는 또 우오타로를 안고 두고 가 해자로 발길을 옮겼다.

 

그날 밤과 똑같이 속삭이는 소리를 내며 버드나무가 흔들린다. 

 

오시즈는 가슴에 안은 아이를 살며시 흔들고 미소를 지으면서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이제 두려워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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