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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기담

미야베 미유키의 <영혼 통행증> 의 <화염큰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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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화염큰북> 

 

지난 시간에 이어 미야베 미유키의 <화염 큰북>의 이야기가 계속 됩니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흥미로운 부분의 시작 부분으로 보셔도 됩니다.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저작권 보호를 위해 삭제하고 재구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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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영혼 통행증> 의 <화염큰북>

 

 

이윽고 약속한 오후 두 시가 되었다. 오시마의 안내로 흑백의 방에 들어온 이야기꾼은 장신에 근골이 탄탄한 무사였다.

나이는 몇 살 정도일까. 서른은 되지 않았겠지만 도미지로보다는 연상이 틀림없다. 몸에 맑은 기가 넘치고 있다. 날카롭게 올라간 눈꼬리, 오똑한 코, 다부진 입매, 약간 길쭉한 이마.

 

말하자면 헌헌장부외모가 춘수하고 풍채가 당당한 남자라고 할까.


 

틀어 올린 상투는 얇고, 끄트머리가 자그마한 은행잎처럼 약간 갈라져 있다. 에도 시대를 통틀어 가장 일반적이었던 남자의 머리 모양를 하고 있다. 사쓰마현재의 가고시마 현 서부를 가리키는 옛 지명의 감색 비백 무늬 삼베옷을 입고 있는데, 이것은 약식이지만 여름의 외출복이다. 

미시마야에는 아마 걸어서 왔을 테니 이 옷차림에 대나무 삿갓을 쓰고 있었겠지. 

이야기꾼이 무사여도 당황하지 않도록, 흑백의 방에는 검게 옻칠을 한 도기 받침대가 갖추어져 있다. 하지만 손님은 두 자루의 도를 끄르더니 옆에 놓았다. 무심해 보이지만 군더더기 없는 동작이다. 

검술 실력도 좋을 것 같은데.

오시마가 조용조용 쟁반을 받쳐 들고 들어와 보리차와 네리키리를 늘어놓았다. 그러고는 옆방으로 되돌아갔다가, 이번에는 보리차를 가득 채운 커다란 질주전자를 담은 쟁반을 도미지로 옆에 두고 간다. 


오시마가 물러가고, 옆방과 이쪽 방을 가르는 당지문이 닫힌다. 도미지로는 정중하게 방바닥에 손가락을 짚고 인사를 했다.

“미시마야의 특이한 괴담 자리에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듣는 역할을 맡은 이 집의 아들, 도미지로라고 합니다.”

고개를 들고 바라보니 상좌의 헌헌장부도 어깨가 굳은 듯하다. 뺨이 상기된 까닭은 긴장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우선 제가 먼저 지껄이는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특이한 괴담자리에는 손님의 이름이나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이야기를 해 주셔도 된다는 규칙이 있습니다."

상대가 장사꾼이라면 이렇게 처음부터 규칙을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러나 무사를 상대하는 만큼 중요한 규칙을 맨 먼저 밝혀두지 않으면 이쪽이 차분해질 수 없다.

"지금부터는 가명을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또 내용에 대해서도곤란한 대목은 숨기거나 바꾸셔도 무방합니다. 전부 손님의 재량에 맡기겠습니다. 이야기하고 버리고, 듣고 버리고. 그것이 이 자리의 규칙입니다. 부디 마음 편하게 말씀해 주시기를 미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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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지로가 다시 한 번 엎드리자 헌헌장부는 모양 좋은 턱을 당기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한 규칙은 직업소개꾼에게 들어 두어 알고 있습니다."

정중한 말투다. 신분을 제쳐 두고, 이야기꾼으로서 여기에 왔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사람은 에도 시중 사람들이 촌뜨기 무사라고 비웃는다는 교대 근무에도 시대에 영주의 가신이 번갈아 에도의 영주 저택에서 근무하던 무사라오." 

“영주님이 에도로 올 때마다 곁을 따르니 이번이 세 번째 상경이지만 옷자락을 털면 흙냄새가 나는 시골 사람입니다. 다만 영지에서는 말하기 어려운 내부의 일을 이곳의 드문 취미 자리에서 털어 버리고 싶다는 마음에 오늘의 기회를 얻었으니 모쪼록 잘 부탁드리지요.”

사투리가 전혀 없는데. 촌스러운 촌뜨기무사라니 당치도 않다.

“이곳 가게에는 5년쯤 전에 첫 교대 근무를 마치고 영지로 돌아갈 때 선물을 찾으러 온 적이 있소. 평판 이상으로 어느 물건이나 반짝거리고 세련되어서 정신없이 구경하느라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은 채 가까스로 도망쳐 돌아가고 말았지만."

겸손한 말투도, 말을 고르며 상대를 대하는 표정도 도미지로에게는 감동적이라 할 만큼 인상 깊었다.

 

“손님의 마음을 흐트러뜨리기만 할 뿐 마음에 드는 물품을 갖추어두지 못했으니 저희 잘못입니다."

미시마야뿐만 아니라 주머니 가게 전체를 짊어진 기분으로 도미지로는 머리를 숙였다.

“빈손으로 돌아가서는, 에도 선물을 기대하고 있는 어머니도 누이도 울고 말 테니 말이오. 다시 날을 잡아 번저에서 일하는 동료에게 부탁해 동행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고른 물건 중에이 댁에서 산 회지함이 있는데 누이가 지금도 소중하게 사용하고 있지요."

오오! 다행이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이분에게는 누이동생과 어머님이 계시는구나. 안주인은 아직 맞이하지 않은 걸까. 아니, 첫 번째 에도 행을 마치고 귀향할 무렵에는 홀몸이었지만 이젠 아내가 있을지도 모르지. 


다행히 헌헌장부가 먼저 보리차에 입을 대 주었기 때문에 도미지로도 목을 축였다. 오늘은 갑자기 마음이 내켜서 보리차 그릇으로 아껴두었던 백자를 꺼냈는데 그러기를 잘했다.

 

지금 헌헌장부의 두툼한 손 안에 쏙 들어가 있는 가냘픈 백자 찻잔은 시원한 여름 꽃 같다.

도미지로의 생각이 전해진 것인지 헌헌장부는 손에 든 백자에 시선을 떨어뜨리고 찬찬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렇게 아름답고 가녀린 풍취의 물건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투박한 것이지만 이 사람의 고향에서도 도기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름 높은 가마가 있는 곳은 정해져 있으니, 섣불리 되물으면 헌헌장부의 고향을 알아맞히게 되고 만다. 도미지로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명산지는 아니라오."

헌헌장부도 곧 변명하듯이 말했다.

“그 도기에."

도미지로는 신중하게, 천천히 물었다.

"이름이 있을까요."

다르다고 해도 명칭은 있을 텐데.

과연 헌헌장부는 말문이 막힌 듯 머뭇거렸다.

"있습니다만."

그걸 말해 버리면 헌헌장부의 이름이나 고향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럼 '가지 도기'로 할까요. 이 도기를 시작한 곳이 가지무라라는 마을이니까요."

물론 도미지로에게는 아무런 지장도 불만도 없다.

 

"이 사람은 아아, 이것도 숨 막히는군."

헌헌장부는 스스로 부정하듯이 말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이제부터는 '나'라고 하지요. 이 이야기는 벌써 20년이나 전, 내가 열 살 코흘리개 꼬마였을 때의 일이라오. 고향에서 말하기가 어려운 까닭은, 내 가문의 지극히 한정된 사람들 사이에서만 알려져있는 비사이기 때문인데."

"얼핏 듣기에는 저희 괴담 자리에 마침맞은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모쪼록 어디에서부터든 마음껏 말씀해 주십시오."

 

"고맙구려."

또 턱을 당기며 헌헌장부는 눈을 감았다. 

“나는 나카무라 신노스케라고 합니다. 다만 비사가 있었던 당시에는, 관례를 치르기 전의 아명으로 고신자라 불리고 있었지요."

비사의 무대인 고신자의 고향은 오카지번, 성은 오카지 성, 나카무라 가가 모시는 주군은 오카지 가제노카미 가지에몬으로 정하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오카지 성이 있는 산 높은 곳에서 한여름의 바람이 불어 내려온다. 오솔길을 내려가는 고신자의 등을 떠밀고, 몸에 밴 땀 냄새를 깨끗하게 날려 주는 듯한 바람이다.

험준한 산이 이어져 있는 이 부근의 지방에는 옛날부터 산성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오카지 산의 산등성이 끝자락에 터를 잡아, 당당하게 사람의 손으로 길을 내고 바위를 깎고 다테보리 산성 주위의 경사면에, 성에 대해 수직으로 판 해자를 파고 구획을 나누어 만든 오카지 성은 특별하다. 

고신자는 오전에는 산기슭에 펼쳐져 있는 통칭 센조 지키 마을에 있는 교에서 '문'을 배우고, 오후부터는 꼬불꼬불한 길을 올라간 곳에 있는 산노쿠루와 본성을 에워싼 세 번째 외성를 연습 장소로 삼아 '무' 단련에 힘쓴다는 충실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금은 '무'에서 돌아오는 길, 오카지 번 전통의 단창을 이용한 미후네파 창술의 기본을 글자 그대로 온몸에 새겨 넣고, 녹초가 되어 집으로 가는 길을 따라 걷고 있는 참이다.

고신자의 생가인 나카무라 가는 고신자의 조부와 아버지에 이어 지금의 형이 3대째 가신들 중에서는 신참이다.

 

오카지 번의 가신단은 그만큼 옛날부터 이 땅에 존재했고 강한 유대로 이어져 있다. 단단한 결속으로 전국 시대의 거친 파도를 헤쳐 오다가 도쿠가와 쇼군가의 세상이 도래하자, 다행스럽게도 오카지 가는 이곳에 영지를 인정받아 도자마 세키가하라 전투 전후부터 도쿠가와 가를 따랐던 영주의 작은 다이묘가 되었다.

 

고신자의 조부는 인근 번의 개역에도 시대에 영주의 영지와 봉록, 집을 몰수하던 형벌으로 봉록을 잃었지만 농사에 밝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어 오카지 번의 영주를 모실 기회를 얻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조부의 외아들이었던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고신자의 형 류노스케는 열다섯 살에 관례를 치르자마자 가문과 관직을 물려받았다.

 

적자인 류노스케 또한 아버지를 쏙 빼닮은 무예자다.

올해 류노스케는 스물한 살, 고신자는 열 살이다. 나카무라 가는 아버지 대부터 근신으로 발탁된 몫이 봉록에 더해졌으나, 가문의 격이 낮아서 일가가 사는 관사는 센조지키초의 변두리에 있다.

지금 고신자는 성대하게 배를 꼬르륵거리며 그곳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요시 형수님이 오늘은 무엇을 먹게 해 주시려나.

형수 요시는 형보다 다섯 살 위다. 류노스케가 어린 나이에 집안을 물려받았으니 야무진 누님 같은 아내가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요시는 오카지 번의 오래된 가문인 치노 가의 여식이다. 류노스케에게는 스무 살에 시집을 왔다. 그때까지 전혀 혼담이 없었다고하니, 가신의 딸로서는 어엿한 만혼이다. 

못생긴 것이다. 사람들은 뒤에서 요시의 용모를 이렇게 비유한다. 

조금 꾸민 정도로는 어떻게 할 수도 없는, 토대의 만듦새부터가못생겼다. 본인도 잘 알고 있어서 아마 시집을 가지 못한 채 조만간 비구니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 요시를 설득한 사람은 류노스케의 어머니였다.

"우리 집에는 요시 님 같은 며느리가 필요해요."

센조지키초의 관사나 무사들이 사는 공동주택에서는 그곳 자녀들의 웃음소리, 울음소리, 고함, 의심하고 당황하는 목소리가 들려와 난리였다고 한다.

당시의 나카무라 류노스케는 열다섯 살의 미소년이었고 용맹과감한 단창의 명수였다. 그와 함께 번교나 도장에 다니는 동료들의 동경과 선망을 받았으나 당사자는 거만하게 굴기는커녕 게으름도 피우지 않고 근면했다.

 

그런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던 가신단의 여식들 사이에서, 류노스케는 하늘의 별이나 다름없었다. 

강가의 돌멩이에 눈과 코를 붙인 것 같은 요시가 류노스케의 아내가 되다니.

 

그것도 류노스케 어머니의 간절한 희망으로.


아기도 태어났다. 사랑스러운 여자아이다. 

 

고신자도 가끔 조심조심 아기를 돌보는데 아이는 형 류노스케를 많이 닮았다.

형수 요시는 요리를 잘한다.

오카지 번에서 가신과 그 가족들은 가문의 격에 상관없이 모두 잡곡밥을 먹는다. 오카지의 영지는 햇볕도 물도 풍부한 땅이지만 산이 많고 평야가 적기 때문에 쌀은 사치품이다.

잡곡과 쌀의 배합, 물의 양, 밥을 짓는 방법은 집집마다 미묘하게 다르다. 그에 따라 밥이 맛있는 집과 맛없는 집으로 나뉘는데, 요시는 우선 이 실력이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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