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기담

미야베 미유키의 영혼 통행증 중 <화염 큰북> 3

SpiderM 2024. 5. 7.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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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영혼 통행증>에 실린 단편 <화염 큰북>이 계속 됩니다. 5편까지 연재가 되고 요약본이라 줄거리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부분은 삭제하고 중요한 부분만 재작성하였습니다.


 

화염-큰북
화염 큰북

 

 

부오오오~, 부오오오~.

여름 바람을 타고 계속 이어진다. 대체 어디에서 나는 소리일까. 고신자는 발길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성이다.'

가파른 산자락을 덮은 무성한 나무들 속을 구불구불 가로지르는 성벽과 그 성벽이 이어진 곳 위에 가냘픈 작은 배를 띄운 듯한 천수대는 여기서도 올려다 볼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서 이런 기묘한 소리가 들려온 것은 처음이다. 적어도 고신자에게는 그렇다. 

고신자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모두 불안한 듯이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 성 쪽을 올려다보고 있다. 그 사이에 할아범과 요시의 얼굴도 보인다.

"할아범! 형수님!"

고신자의 부름에 야마베 하치로베는 퍼뜩 이쪽을 보았다. 

 

"오오.고신자 님."

오카지 성 쪽을 올려다보고 있는 요시의 표정은 어째서인지 몹시 험악하다.

"할아범, 이게 무슨 소리야?"

"고신자 님은 모르십니까. 소라 소리입니다."

"그쯤은 나도 알아. 그런데 이런 소리가 나는 거였나?"

소리가 그치자 불안한 표정을 짓던 사람들도 관사 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요시만은 여전히 딱딱한 얼굴로 같은 자리에 서 있다.

"형수님, 왜 그러십니까."

"다녀오셨어요. 도련님. 간식을 만들어 두었답니다."

그러다가 다른 이들이 돌아가고 나카무라 가의 세 사람만이 남았다는걸 확인하자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어 말을 이었다.

"아까의 소라 소리는 큰북 님께 변사가 있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고신자는 어리둥절했다. 할아범은 주름진 얼굴 안쪽에 틀어박혀있는 작은 눈을 깜박거렸다.

"야마베 님은 이미 아시겠지만 제 친정이 큰북 님을 모시고 있기때문에 일단 유사시에는 이 소라가 연주된다는 사실을 저도 알고있습니다."

“이미 나카무라 가에 시집온 몸인 저는 그렇다 치고… 큰북 님께 어떤 변사가 일어났느냐에 따라서도 다르겠지만 류노스케 님께는 중요한 하명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정신 차리고 있어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 늙은이도 마음의 준비를 해 두지요.”

두 사람의 뒤에 남겨진 고신자는 여전히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큰북님?'



"다음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저희 번오카지 번의 소방 구조에 대해서 이야기해 두어야겠군요."

헌헌장부가 보리차로 목을 축이고 나서 말을 이었다.

"우리 영지에도 에도의 주민 소방대와 비슷한 조직이 있었습니다. 하기야 조직으로 상주하고 있었던 것은 산 위에 있는 오카지 성뿐이지만."

도미지로는 생각했다. 에도 시중에서는 '다이묘 소방'이라고 해서 시중의 화재에 대처하기 위해 여러 다이묘가 거느리고 있는 소방대가 있지만, 다이묘가 영지에서 자신이 다스리는 고장을 위해 설치하는 소방대의 경우에는 그 지역의 주민 소방대가 되는 것이로구나.

"가신들 중 젊고 용맹한 평무사가 아시가루 에도 시대의 최하급 무사. 평상시에는 잡역을 하다가, 전쟁 때에는 보병이 되었다나 주겐 무가의 하인을 모으고 마을에서도 목수나 인부 등을 넣어 구성한 소방대였지요. 무사의 신분이 아니어도 일정한 수당이 나왔던 데다, 주민 소방대로 뽑히는 것은 대단한 명예였기 때문에 목숨을 거는 일인 줄 알면서도 지원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도미지로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자 헌헌장부는 싱긋 웃었다.

"아니, 오카지 번의 소방대에는 독특한 이름이 있었소."

'큰북 소방대'라고 불렀다고 한다.

"산노쿠루와에 둔소를 두고 있다가 산불이 나면 이곳에서 위로 올라가고, 성 아래의 센조지키초에서 화재가 일어나면 성의 정문을 빠져나가 구불구불한 길을 내려와 달려가지요."

산노쿠루와 옆에 서 있는 소방 망루에는 항상 큰북이 하나 매달려 있었다.

"크기는 작은 대야 정도.”

헌헌장부가 양손을 어깨 넓이로 벌려 그 크기를 보여 준다.

"만듦새가 지극히 소박했는데, 꽤 낡고 더러웠습니다."

오카지 번의 소방대는 화재가 일어나 출진할 때 반드시 이 큰북을 매달고 갔다.

"불이 난 곳에 달려가는 동안에도, 도착해서 불을 끄기 시작하고 나서도 쉼 없이 북을 치는 것이오.”

북을 치는 사람은 이때를 위해 평소부터 단련하고 있는 '북지기'로 반드시 가신들 중 젊은 무사가 맡도록 정해져 있었다.

“그러면 아무리 큰 불이 일어나도 순식간에 진화되지요."

실제로 헌헌장부가 여섯 살인가 일곱 살 때 목격한 적이 있다고 한다. 성 아래에서 상당히 큰 화제가 일어났는데 산성에서 달려온 소방대가 도착하자마자 보이지 않는 손이 어루만진 것처럼 진화되어가는 모습을.

"아하." 도미지로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큰북소방대'의 유래로군요."

"그렇소. 하지만 큰북은 이렇다 할 특징도 없는 흔한 물건이고, 두드리면 물이 나오는 것도, 바람이 불어 나오는 것도 아니라오."

큰북은 소방대를 고무시키는 역할을 하며 가지고 나가면 순조롭게 불을 끌 수 있다는 길조의 의미가 있긴 하지만 북 자체에 진화를 위한 어떤 효능이 있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마치 옛날 이야기 같지만 오카지 번의 큰북 소방대가 모시는 큰북은 일종의 신기이며 불가사의한 힘으로 화재를 제압하는 물건이었던 것이다.

그날, 저녁 때는 고사하고 밤이 깊어도 형 류노스케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단서는 없었고 성에서 소식이 오는 일도 없었다.

번주의 근신을 맡고 있는 형이 평소와 다르게 행동한다면 일단은 오카지 성의 중추에서 변사가 일어났는지 의심해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어수선한 상태로 나카무라 가의 사람들은 만 이틀을 기다렸다. 사흘째 아침에, 류노스케가 큰 부상을 입고 오카지 성 산노쿠루와의 큰북 소방대 둔소에 있다는 소식이 도착했다. 전령은 요시의 친정 치노 가의 가레이 집안일이나 회계를 관리하던 사람로, 요시에게 남편을 간호하러 오라는 말을 전함과 동시에 고신자에게도 함께 가라고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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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느 분께서 고신자 님을 부르시는 것이오?"

형수의 무인 같은 말투에 고신자는 놀랐다. 

치노 가의 가레이는 앞뜰의 땅바닥에 한쪽 무릎과 한쪽 손을 짚고 빠른 말투로 대답했다.

“영주님의 하명이십니다."

가레이의 말을 듣고 고신자는 또 오싹했다.

 

“가겠습니다!"

천장을 뚫을 듯한 큰 소리의 대답은 이웃집에까지 울렸을지도 모른다.

결국 류노스케와 고신자가 걱정된다는 야마베 할아범과 함께 셋이서 오카지 성 산노쿠루와의 둔소로 가게 되었다. 다친 사람을 간호하는 데 필요한 물건을 나누어 짊어지고 산길을 오르는 동안 세 사람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친 사람이 왜 소방대의 둔소에? 라는 의아함은 도착하자마자 풀렸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일어나서 겨우 앉아 있을 정도의 경상인 사람부터, 옴짝달싹 못한 채 온몸을 무명천으로 감고 드러누워서 숨을 쉬는지도 의심스러울 만큼 중상을 입은 사람까지 대략 열두세 명은 된다. 

상처는 깊지만 다행히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있던 류노스케는 나카무라 가의 세 사람을 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임무를 수행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요시는 재빨리 바닥에 손가락을 짚고 인사를 했다. 류노스케는 아픔에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웃음을 띠었다. 하지만 고신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뺨 한구석에 숨길 수 없는 비통한 무언가가 스쳐 웃음을 지우고 말았다.

"고신자, 내가 이 꼴이 되어 너를 끌어들였구나.”

미안하다하고 신음하듯이 중얼거린다.

류노스케를 필두로 이곳에서 신음하는사람들, 죽어가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은,

'화상이다.'

모두가 화재 때문에 다쳤을까.

류노스케의 허리에서부터 아래로도 무명천이 두껍게 감겨 있었다. 그래도 약 냄새가 풀풀 풍긴다. 겹쳐진 무명과 무명 사이로 화상용 기름약이 배어 나오고 있다. 칼에 입은 상처 같은 것은 양쪽 팔에 약간 흩어져 있을 뿐이다.

게다가 또 하나, 이 자리에는 그냥 보아 넘길 수 없는 의혹이 있었다.

오카지 번은 작은 번이다. 가신들은 대부분이 서로 얼굴을 아는 사이다. 하지만 머리카락이 완전히 타서 스님 같은 모습으로 한쪽 구석에 힘없이 잠들어 있는 저 사람과, 물집투성이 얼굴에 목부터 허리까지 무명천에 둘둘 감긴 채 충혈된 눈으로 천장을 노려보는 저 사람. 둘의 얼굴은 본 기억이 없다. 몇 번을 다시 보아도, 낯선 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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