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본기담

미야베 미유키 인내상자 - 1

by SpiderM 2024. 5. 7.
반응형

미야베 미유키의 인내 상자 1편입니다.

 

에도 시대물로 기이한 이야기와 호러 소설이 혼합되거나 훈훈한 미담으로 끝이 나는데요.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미유키씨의 글은 장르를 따 부러지게 구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만 본인이 추리라고 하니까 추리로 하겠습니다.


 

혼조 에코인 옆, 흔히 '절 뒷길'이라 불리는 곳에 있는 과자점 오미야에 불이 난 것은 섣달도 중순에 접어들어 차디찬 북풍이 휘몰아치던 한밤중이다 1657년 대형 화재로 사망한 10만 8천 명의 집단 장례를 위해 건립된 정토종 사원이 에코인이다.

 

미야베 미유키 인내상자
미야베 미유키 인내상자

 

그 후 대지진으로 사망한 사람 등 무연고 망자들을 매장하는 곳이 되고, 스모 선수, 사망한 태아나 신생아, 반려동물, 가축을 공양하는 곳으로도 알려져 유명한 참배지가 되었다. 식구들과 점원들이 잠자리에 든 지 오래인데 불단속을 단단히 해 두었을 부엌에서 갑자기 불길이 시작된 것이다. 불은 부엌을 태우고 천장으로 옮겨 붙어, 반질반질한 떡갈나무 마룻널 복도에 연기가 자옥해지도록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탓에 커다란 재난이 되고 말았다.


<미야베 미유키-인내상자>


오미야 주인 세이베에의 외동 손녀이며 해가 바뀌면 14살이 되는 오코마는 부엌에서 멀리 있는 본채 남쪽의 멋진 정원에 면한방에서 어머니 오쓰타와 베개를 나란히 하고 잠들어 있었다. 온집을 다 태울 기세로 타오르는 불길과 연기도 오코마의 꿈속에까지 번지지는 못하여 그녀의 잠은 깊고 평화로웠다.

먼저 눈을 뜬 것은 어머니 오쓰타였다. 잠결에 멀리서 쇠붙이때리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 일어나 앉았다. 방 안은 쥐죽은 듯 조용하고 싸늘한 밤공기만 가득한 것이 아무 일도 없는 듯했다. 하지만 큰 도매상을 너끈히 감당할 수 있는 안주인으로 단련되어 온 그녀의 감은 이 야밤에 심상치 않은 사태가 일어나고 있음을 고하고 있었다. 오쓰타는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복도와 방을 가르는 장지를 열었다. 그러자 복도에는 선녀가 살며시 소맷자락이라도 펄럭인 양 희미한 흰 연기가 얇은 띠처럼 감돌고 있었다.

오쓰타는 크게 소리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외침보다 먼저 부엌쪽에서 오시마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하녀장은 기겁한 목소리로 계속 외쳐서 온 집 안에 화재를 알렸다.

과자점 오미야는 그리 큰 건물이 아니다. 창고를 제외하면 점포와 살림집을 합쳐도 방은 열 칸이 안 된다. 부엌에서 뿜어져 나와 혀를 날름거리며 복도와 고용인 방으로 뻗어가는 불길의 새빨간 색깔이 복도를 뛰어가는 오쓰타의 시야로 날아들었다.

“오시마, 오시마, 위험해!"

“마님, 이리 오시면 안 돼요!"

물통을 들고 화염과 싸우는 지배인 하치스케의 옆모습이 연기와 열기 속에서 얼핏 보였다. 불티가 얼굴로 쏟아져 내렸다. 오쓰타는 잠옷 소매로 얼굴을 가리며 어떻게든 오시마 들을 도우려고했지만 연기에 기침이 터져서 접근하기도 쉽지 않았다.

'틀렸어. 끌 수 있는 불이 아니야.'


<미야베 미유키 인내상자>

 

그렇게 판단한 오쓰타는 몸을 돌려 복도를 달려서 방으로 돌아왔다. 방에 들어와 보니 오코마가 담요 위에 무릎으로 일어선 채잠옷 앞섶을 꼭 쥐고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엄마."

"일어나. 불길이 번지고 있어. 피해야 해.”

오쓰타는 오코마에게 달려들어 이불 위에 펴 놓았던 솜을 두툼하게 둔 한텐을 입혔다.

"복도는 이미 위험하니까 뜰로 나가 뜰을 돌아서 할아버지 방 툇마루로 올라가 할아버지를 깨워라. 할아버지와 함께 남쪽 복도를 지나 점포를 통해 밖으로 피해, 알았어?"

당주 세이베에는 65세, 가게 일이라면 여전히 척척 해내지만가는 귀가 먹었다. 아직 깨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세이베에의 방은 부엌에서 제일 먼 남쪽 끝에 있다. 오코마와 함께 대피하면 걱정할 일 없을 것이다.

“엄마는?" 오코마가 어머니의 소매를 잡았다. "같이 가요."

“나도 곧 나갈게." 오쓰타는 오코마의 손을 잡고 미소를 보여주었다. 

 

"몇 가지 챙겨 갈 게 있어. 금방이면 돼. 어서 피해."

절 뒷길 초입에 있는 방화망루로 짐작되는 곳에서 비상종이 빠르게 난타되었다. 에도 시중에 화재가 일어나면 동네마다 설치된 망루에서 비상종을 쳐서 주위에 알렸는데, 화재 현장이 멀면 종을 느리게 치고 가까우면 급하게 쳤다. 


"자, 어서가, 어서!"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