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쿠의 복수는 신분제가 확실했던 과거 일본의 여성에 대한 사상이 어땠는지를 잘 알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기담 중 하나로, 신분제에 얽매여 억울하게 죽은 여인 오키쿠의 원령이 복수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여성은 살아서는 아무 힘이 없어 학대를 받더라도 참거나 죽는 것이 미덕이었던 사회에서 자신의 원수를 갚을 길은 귀신, 원령이 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근대에 들어서기 전까지 일본의 가난한 집안에서는 장남을 뺀 나머지 자식들을 모두 군식구 취급했다. 심지어 흉년이 들면 아이들을 죽이는 유아 살해도 빈번했다고 전해진다. 가난한 집에서는 입을 줄일 요량으로 딸을 부잣집 하녀로 보내는일이 빈번했다.
가난한 집 자식으로 태어난 오기쿠 역시 어린 나이로 부잣집에 하녀로 들어가게 되었다. 철이 들기 전부터 부모의 품을 떠나 힘든 일을 하게 되었지만, 낙천적인 성격의 그녀는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하루빨리 돈을 모아서 사랑하는 산페이와 살림을 차릴 꿈을 꾸었다.
문제는 집 주인인 세이자에몬이 점점 예뻐지는 그녀에게 눈독을 들였다는 데 있었다. 세이자에몬은 그녀에게 첩실로 들어오라고 유혹했지만, 오기쿠는 연인 산페이를 떠올리면서 거절했다. 하지만 주인의 명령을 거역하면 하루아침에 쫓겨날 수 있었기 때문에 주인의 추근거림을 딱 잘라서 거절하지 못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마침내 주인마님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당시에는 남편이 집안의 하녀를 첩으로 들이는 것이 자주 있는 일이었지만, 아내 입장에서는 속이 뒤집어지고도 남을 일이었다. 거기다 그렇
게 들어앉은 첩이 남편의 사랑을 독식한다면 그것만큼 기분 나쁜 일도 없었다. 질투심에 사로잡힌 그녀는 오기쿠를 불러서 크게 혼을 냈다.
"네가 어떻게 하고 다녔는지는 모르겠지만 또다시 내 남편을 유혹하면 이 집에서 쫓아내겠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오기쿠는 억울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꾹 참았다가 산페이에게 하소연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산페이 역시 일개점원에 불과해 손을 쓸 도리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세이자에몬의 구애는 도를 넘어섰고, 부인은 오기쿠가 남편을 유혹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고는 손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세이자에몬의 생일을 맞이해서 잔치가 벌어졌다. 오기쿠를 비롯한 하녀들은 손님을 맞이하고, 음식을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세이자에몬의 집에는 가보로 내려오는접시 열 개가 있었는데, 조선에서 만든 것으로 색깔과 문양이 아름다워서 귀한 손님들이 올 때만 꺼내 사용했다. 그날도 손님들을위해 접시를 사용한 뒤, 잔치가 끝나자 세이자에몬의 부인은 오기쿠에게 지시했다.
"접시들을 모아 우물에서 씻은 뒤 나에게 가져오너라.”
접시를 차곡차곡 쌓아 조심스럽게 우물가로 가져간 오기쿠는정성껏 접시를 닦았다. 그리고 몇 번이고 숫자를 센 다음에 기다리고 있던 세이자에몬의 부인에게 건넸다. 그녀가 닦은 접시를 꼼꼼하게 살펴보던 부인이 접시를 들고 안방으로 들어가자 긴장하고 있던 오기쿠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이러다간 내 명에 못 살지."
그렇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잔치 뒷마무리를 하느라 늦게까지 일하던 오기쿠는 해가 떨어진 다음에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하지만 막 잠이 들려는 찰나, 세이자에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기쿠! 오기쿠!"
놀란 그녀가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세이자에몬이 들이닥쳤다. 그러고는 영문을 몰라 하는 그녀를 향해 마구 화를 냈다.
"조선 접시가 한 장 없어졌다. 대체 어디로 빼돌린 것이냐!"
“그럴리가요? 열 장 모두 마님에게 건네 드렸는 걸요?”
놀란 그녀가 반문했지만, 세이자에몬은 펄펄 뛰었다.
“감히 내 집사람을 모함하는 게냐? 네년이 접시를 툇마루에 놓고 허겁지겁 사라져서 이상하게 여겼다고 했느니라.”
아닌 게 아니라 세이자에몬의 뒤에는 부인이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는 오기쿠로부터 접시 열 장을 제대로넘겨받았지만, 그중 한 장을 몰래 숨기고 남편에게 거짓말을 한것이다. 세이자에몬은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오기쿠가 훔친 접시를 몰래 팔아서 애인과 함께 도망치려고 한다는 모함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때야 부인의 음모를 눈치챈 오기쿠는 무릎을 꿇고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세이자에몬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건장한 남자 하인들을 시켜 그녀를 묶고 몽둥이로 때리게 했다. 매질을 당해 피를 토하면서도 접시를 훔치지 않았다고 호소했지만, 세이자에몬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명백하게 죄상이 드러났는데도 잡아떼다니 괘씸하다.날이 밝는 대로 마치부교(일본 에도 시대 행정과 사법 업무를 담당한 관청)에게 끌고 가서 큰 벌을 내리겠다."
매질을 당한 오기쿠는 창고에 갇히고 말았다. 밤이 깊어지고 고통에 못 이겨 끙끙대던 그녀는 몸부림을 치던 끝에 손에 묶인 결박을 풀었다. 그리고 창고를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도망치다가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대로 도망쳐 버린다면 접시를훔쳤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 될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친 것이다.
시골에 사는 부모님이 겪으실 고초는 물론, 사랑하는 산페이와도 영영 이별하고 말 것이었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이런 난감한 상황에 처한 것이 너무 서럽고 슬펐던 오기쿠는 엉엉 울다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러고는 낮에 접시를 닦던 우물가로 다가가 우물 속으로 몸을 던졌다.
다음 날 아침, 세이자에몬의 집은 발칵 뒤집혔다. 창고에 갇혀있던 오기쿠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집안을 샅샅이 뒤지던 하인들은 우물 속에서 그녀의 시신을 발견했다. 오기쿠의 시신을 끌어낸 세이자에몬은 사람을 보내 그녀의 부모를 데려오게 했다.
연락을 받고 세이자에몬의 집으로 온 오기쿠의 부모는 물에 빠져 죽은 딸의 시신을 목격하고 큰 충격에 빠졌다. 이어 세이자에몬이 냉랭한 얼굴로 딸의 죄를 얘기하자 망연자실했다. 부모 입장에서는 당연히 믿기 어려운 얘기였지만 감히 반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넋이 나간 부모를 대신해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른사람은 산페이였다.
그렇게 일이 마무리되고 세이자에몬은 새 하녀를 고용했다. 무거웠던 분위기는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누그러졌고, 사람들은 서서히 그녀의 죽음을 잊었다. 그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밤중에 눈을 뜬 새로 온 하녀는 측간에 다녀오다가 우물가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 한이 서린 것 같은
여인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겁에 질린 하녀가 기둥 뒤에 숨어서 바라보자
온몸이 피투성이인 여인이 우물가에 서서 접시를 세고 있는 게 보였다.
“한 장, 두 장, 세장, 네장.......”
이렇게 아홉 장까지 센 여인은 한참 흐느껴 울다가
침울한 말투로 얘기했다.
"한 장이 모자라. 다시 세 봐야지. 한 장, 두 장......."
눈을 동그랗게 뜬 하녀는 접시를 세는 여인의 소름 끼치는 말투와 외모를 보고는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겁에 질린 하녀는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방으로 돌아와서 요기(이불 대신 쓰는 잠옷)를 뒤집어썼다. 그리고 날이 밝자마자 짐을 챙겼다. 무슨 일로 그만두는지 묻는 세이자에몬의 부인에게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물가에 귀신이 있어요. 제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요."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섰다. 부인은 꺼림칙했지만 일단 다른 하녀를 고용했다. 하지만 그녀도 하룻밤이 지나자 같은 얘기를 하고는 집을 나가고 말았다. 그 다음으로 들어온 하녀도 마찬가지였고, 오랫동안 일을 했던 하녀와 하인들도 우물가의 귀신을 봤다며 술렁거렸다. 그러다 오기쿠를 매질했던 하인 한명이 우물가의 귀신을 보고 뒷걸음질을 치다가 발을 헛디뎌 크게 다치는 일이 벌어졌다. 그 일을 계기로 다른 하인과 하녀들도 하나둘씩 집을 떠났다. 덜컥 겁이 난 세이자에몬의 부인은 뒤늦게 남편에게 사실을 털어놨다. 그때야 아내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안세이자에몬은 크게 화를 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할 수 없지. 음양사를 불러야겠어."
세이자에몬은 주변에 수소문해서 용하다는 음양사를 불렀다. 음양사는 오기쿠가 빠져 죽은 우물을 새끼줄로 감고 부적을 붙인 다음 툇마루에 앉아서 해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세이자에몬과 부인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안방 문을 살짝 열어놓고 지켜봤다. 해가 떨어지고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 음양사가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우물가에서 하얀 연기와 함께 피눈물을 흘리는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본 세이자에몬의 부인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저건 오기쿠가 틀림없어요."
음양사가 주문을 외웠지만 오기쿠의 원령은 가볍게 무시하고 천천히 손에 들고 있던 접시를 셌다.
"한장, 두장, 세장, 네장, 다섯 장......."
음양사가 필사적으로 주문을 외웠지만 오기쿠의 원령을 막지는 못했다. 결국 새벽이 되자 기진맥진한 음양사가 고개를 저었다.
"원령의 원한이 너무 강력해서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소이다."
음양사까지 손을 못 댄다는 소문이 퍼지자 남아 있던 하인과 하녀들까지 모두 집을 나가고 세이자에몬과 부인만 남았다. 세이자에몬은 뒤늦게 오기쿠의 부모에게 용서를 빌려고 했지만, 딸을 잃은 충격에 두 사람 모두 세상을 떠난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오기쿠의 장례를 치른 산페이도 행방이 묘연했다. 방법이 없어진 두 사람은 집을 팔고 멀리 떠나고 싶었지만,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탓에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밤이었다. 자다가 눈을 뜬 부인이 남편을 깨웠다.
“나 측간에 가야 하는데 무서워요."
"알아서 해. 귀찮게 하지 말고."
그녀는 매정하게 얘기하고 돌아누운 남편을 몇 번이고 흔들어 깨웠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혼자 등불을 들고 나와측간으로 갔다. 우물이 있는 곳을 멀리 돌아간 탓인지 아무 일도 없었다. 한숨 돌린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방으로 돌아왔다. 그 순간, 눈앞에 나타난 오기쿠의 원령이 서슬 퍼런 목소리로 말했다.
"여덟 장, 아홉 장, 한 장이 모자라. 한 장이 모자라."
직접 눈앞에서 오기쿠의 원령을 본 그녀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까무러치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세이자에몬은 마당 한구석에서 시체처럼 누워 있는 부인을 발견했다. 서둘러 방으로 데리고 들어왔지만 아내는 심한 충격을 받았는지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그리고 누워 있다가 가끔 발작을 했다.
"천장에 오기쿠가 있어요. 접시 숫자를 자꾸 세고 있다고요." 의원이 지어준 약을 먹여 봤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날이 갈수록 쇠약해진 그녀는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다음은 세이자에몬의 차례였다. 아내의 장례를 치른 순간부터 하던 일이 자꾸만 실패로 돌아갔다. 처음에는 작고 사소했지만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지고 말았다. 마지막에는 살던 집에서 불이 나는 바람에 가진 재산을 모두 날린 것은 물론, 불을 냈다는 이유로 막대한 벌금까지 물고 말았다. 벌금을 내느라 애지중지하던 아홉 장의 접시까지 팔아야만 했다. 결국 빈털터리가 된 세이자에몬은 서민들이나 사는 나가야라는 곳에서 살다가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두 사람이 오기쿠의 저주를 받아서 죽고 난 이후 불에 탄 폐가에는 아무도 가까이 가지 않았다.
한편 연인 오기쿠의 억울한 죽음을 지켜본 산페이는 그녀의 영혼을 위로해 주기 위해 순례여행을 떠났다. 사찰과 신사에 들러 그녀의 영혼을 위로하는 의식을 치르고 길을 떠나는 것을 반복했다. 춥고 더운 날씨와 험한 길이 괴로움을 안겼지만 산페이는 연인의 넋을 위로해 주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찰에 들렀다가 어느 여인과 만났다. 그녀 역시 연인의 억울한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순례를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같은 처지였던 두 사람은 길동무가 되어 같이 여행을 떠났다. 예정된 순례가 모두 끝나고, 바닷가에 앉아 있던 산페이는 그녀에게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가실 거요?"
"하늘나라로요. 그동안 즐거웠어요."
여인의 입에서는 오기쿠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놀란 산페이가 돌아보자 방금 전까지 옆에 있던 여인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접시 한 장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놀란 산페이는 접시를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접시는 오기쿠가 숨겼다고 의심을 받았던 세이자에몬 집안의 가보인 조선 접시였다.
접시를 조심스럽게 챙긴 산페이는 에도로 돌아왔다. 그리고 세이자에몬의 집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전해 듣고는 집으로 갔다. 폐허가 된 집을 둘러본 산페이는 근처 사찰의 주지 스님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놨다.
"원령이 얼마나 억울했으면 그리했을꼬? 그 접시를 팔아서 우물가에 비석을 세우고, 넋을 위로해 주는 건 어떻겠소?”
"그게 좋겠습니다.”
산페이는 접시를 팔아서 받은 돈을 사찰에 기부했다. 곧 우물가에는 그녀의 억울함을 위로하는 비석이 세워졌다.

'일본기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실연의 끝 원령이 된 기요 히메 - 마지막 회 (62) | 2024.05.17 |
---|---|
실연의 끝 원령이 된 기요 히메 (2) | 2024.05.17 |
귀 없는 비파명인 일본 기담 이노우에 히로미 - 마지막회 (73) | 2024.05.16 |
일본 기담 중 귀 없는 비파 명인 (1) (67) | 2024.05.15 |
이노우에 히로미의 일본기담 중 추녀의 복수 (71) | 2024.05.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