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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기담

무쿠로바라_미야베 미유키_불문율_단편 추리 소설_2/4

by SpiderM 2024.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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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단편 소설집 불문율 중

무쿠로바라 2번째입니다.

 

예상보다는 길어질 것 같습니다.

3편을 4편으로 바꾸어 실겠습니다.

 

그래서 3/4이라고 붙였습니다.

 

미야베 미유키 - 불문율

 

 

그저 '트집을 잡혔다' 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시바의 말에 따르면 스쳐 지나가다 어깨가 부딪혔다든가, 자지러지게 웃다가 우연히 눈이 마주쳤다든가 하는 고전적인 계기를 만든 기억도 없다고 한다. 갑자기 누가 등 뒤에서 어깨를 강하게 붙잡았다.

 

"뭐야, 너는 어디서 거드름을 피워!"

 

이십 대 후반쯤 된 불량한 차림새의 젊은이가 탁한 목소리로 욕설을 퍼붓는 것에 기겁해 눈을 부릅떴다. 젊은 남자는 하시바의 눈앞에 잭나이프를 내밀었다.

 

'일반인 주제에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와' 같은 욕설도 날아오지 않았다. 말보다 먼저 칼. 갑자기 찔릴 뻔한 하시바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언제든 만원 전차 수준으로 북적이는 시부야 센터 거리다. 게다가 하필 운 나쁘게 주말인 금요일이었다. 민첩한 사람이라면 오히려 인파에 뒤섞여 도망치기가 쉬웠을지도 모르지만 정장에 가죽 구두, 가죽 가방을 든 중년 남자에게는 악몽 속에서 도망치기보다 좋지 않은 상황이었으리라.

 

뒤에서 양복의 한쪽 소매를 칼로 찢는 바람에 겁을 집어먹은 하시바를 남자는 고양이라도 드는 양 목덜미를 붙잡아 들어 올렸다. 상대는 하시바보다 삼십 센티미터나 키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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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어떻게 됐는지 기억나지 않아요."

 

하시바는 재삼 그렇게 말했다. 그저 무서웠을 뿐이지 뭘 어쩌려는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고. 주위에서 지켜보던 동료들도 다리가 얼어붙은 것처럼 옴짝하지 못했고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시바는 대롱대롱 매달린 채 다리를 차며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입만 뻐끔거렸다. 우연히 그곳에 있던 대학생이 보다 못했는지 순간적으로 뛰어들어 하시바를 붙든 젊은 남자에게 몸을 던졌다. 세 사람은 뒤얽혀서 땅에 굴렀다.

 

대학생이 맨 먼저 일어났다. 뒤이어 일어난 난폭한 젊은 남자의 손에는 아직 칼이 들려 있었다. 땅바닥에 납작 엎드렸던 하시바의 눈에도 햄버거 가게 간판 불빛을 반사해 빛나는 두툼한 칼날이 보였다고 한다.

 

"학생이 찔린다! 하고 생각한 저는 칼을 든 남자 무릎에 정신없이 달라붙었어요. 학생에게 덤벼들려던 남자는 균형을 잃고 머리부터 고꾸라졌습니다. 쾅하는 소리가 들렸으니 콘크리트에 머리를 부딪혔을 겁니다."

 

남자도 이번에는 칼을 떨어뜨렸다. 하시바는 필사적으로 칼을 낚아채듯 주워 들어 자연스럽게 칼끝을 앞쪽으로 향하게 쥐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격받았다가 운 좋게 상대한테 날붙이를 빼앗는 데 성공한 사람이라면 백이면 백 똑같이 하리라고 반장은 생각했지만, 그 부분이 '살의가 있었다'라고 인정된 탓에 나중에 이래저래 번거로워졌다.

 

"상대가 덤벼들었어요. 고함치면서 팔을 휘둘렀고 주먹이 제 얼굴을 때렸어요. 침도 튀었습니다. 여하튼 저는 칼을 떨어뜨리지 않는 게 고작이었어요."

 

하시바는 말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상대방이 어마어마한 기세로 돌진해 와서 눈을 감고 칼을 양손으로 쥐었어요. 그러자 거기에."

 

하시바에게 달려든 남자가 저돌적으로 달려와서 자신의 칼을 자신의 왼쪽 가슴에 꽂고 말았다.

 

남자가 벌러덩 쓰러지고 주위에는 공황 상태에 빠진 비명이 소용돌이쳤다. 멀리서 경찰차 사이렌이 다가오는 동안 하시바는 눈을 부릅뜨고 입도 쩍 벌린 채 손가락 관절이 하얗게 도드라질 정도로 칼을 꽉 쥐고 그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무도 하시바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절박한 고비를 구해 준 대학생마저 기겁하고 주저앉았다고 한다.

 

결국 달려온 경찰관이 하시바의 손에서 칼을 빼앗았다. 하시바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처음에는 경찰이 다가왔다는 사실이나 칼을 버리라고 경고하는 소리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 역시 하시바의 불운이고 사건이 시끄러워진 원인이 되었다.

 

 

 

긴급 체포된 하시바는 '정신을 차려 보니 너무 무서운 나머지 지리고 말았다는 걸 알았지만 바지를 갈아입지도 못한 채 경찰의 조사를 받아야 했다. 거기서 반장과 얼굴을 마주쳤다.

 

반장은 살해당한 '결과적 피해자가 사는 동네의 불량 그룹 출신으로 각성제 소지 전과가 있는 남자라는 데이터가 나오기 전부터 정당방위겠거니 생각했다. 하시바의 모습에서 그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직감적 판단이 술술 통과될 만큼 법치국가는 무르지 않다. 피해자의 혈액에서 마약이 검출되었고, 당시 상황을 명확하게 얘기해 줄 목격자 대학생은 물론이고 사람들이 산처럼 있었는데도, 하시바 히데오가 저지른 '살인'은 정당방위이며 하시바에게는 살의가 없었다는 논거로 사건이 마무리되지는 못했다. 판단은 결국 법정으로 넘어갔다.

 

사건을 담당한 재판관이 여성이라는 사실 하나만은 하시바한테도 행운이었다. 여자 재판관은 끈질기게 치근거리는 주정뱅이에게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밀쳤는데 상대가 비틀비틀 헛발을 디디더니 선로로 떨어져 전차에 치여 사망한, 역시 조사 단계에서는 정당방위 주장을 인정받지 못하고 공판까지 넘어와 겨우 무죄를 쟁취한 가여운 스트리퍼 사건을 기억했다. 사건의 성격, 법적인 해석으로 시비 거는 상대를 그냥 밀친 것과 칼을 들고 상대를 겨눈 건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지만 여성 재판관은 그때의 판례를 근거로 온 힘을 다해 하시바의 무죄를 주장해 주었다.

 

 

 

신문 발표에서는 판결 주문 요약 같은 건조로운 형태로 바뀌어버렸지만 반장이 들은 생생한 정보로는 합의 자리에서 여성 재판관이 한 말에는 듣는 사람의 등줄기가 꼿꼿이 설 만한 위엄과 열의가 있었다고 한다. 그에 더해 동료들이 보낸 탄원서나 하시바에게 동정적인 보도를 한 매스컴에 의해 환기된 여론의 힘도 가세했으리라.

 

그러나, '뭐야, 그럼 결국 정당방위가 된 거군. 잘됐네, 무죄로 인정받고 집에 돌아갔잖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참으로 무른 생각이다.

 

목구멍만 넘어가면 뜨거움을 잊는다고 한다. 이 말은 문자 그대로의 뜻도 진리지만 반대 상황 역시 진리다.

 

하시바의 편을 들어주었던 사람들, 특히 직장 관계자와 친척 등은 '무력한 시민을 폭력의 희생양으로 삼지 마라', '공격을 당하면 묵묵히 죽으라는 말이냐'라는 여론의 소용돌이 속에 있을 때는 그야말로 목이 너무 뜨거워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한편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사건이 결말을 보이고 하시바가 돌아오자 원래의 장소로 돌아오자 갑자기 식은 목으로는 하시바라는 존재를 삼키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당방위였다고는 해도, 하는 수 없었다고는 해도 하시바는 사람 한 명을 찔러 죽였다.

 

마치 위 내시경 검사로 발견한 아주 작은 종양 같다고 할까. 암이 아니다. 악성이 아니다. 하지만 밥을 먹을 때마다 불쾌감을 느낀다. 밥은 매일 먹어야 하는데.

 

절제하는 편이 좋다. 이르든 늦든 누군가가 말하게 되어 있다.

 

다른 무엇보다도 하시바의 직업이 지방 공무원이었다는 게 좋지 않았다. 그런 곳의 상층부는 약아서 절대로 자신들의 입으로 그만두라고 말하지 않는다. 본인이 불편해서 그만두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하시바 히데오는 혐의가 풀려 법정을 나온 지 정확히 석 달 후에 자진 퇴사했다.

 

가정은 이것보다 경과가 복잡하고 그만큼 더 비참했다. 하시바에게는 당시 십오 년을 함께 산 부인과 열세 살 난 외동딸이 있었다. 그들은 먼저 이웃 모임에서 서서히 배척당했고 자연스레 딸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게 되었다. 하시바가 구청을 그만둔 게 이런 경향에 박차를 가해 끝내 딸이 유서를 남기고 가출하는 소동으로까지 발전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살인자는 살인자다, 너를 위해서 헤어지라는 거다' 따위의 말을 고집스럽고 격렬하게 쏘아붙이는 친정과 하시바 사이에 낀 부인은 정신적 피로 때문에 단숨에 열 살이나 늙어 버렸다.

 

지칠 대로 지친 부부는 합의 이혼했고, 하시바가 착실하게 모은 예금과 적금 대부분은 물론 딸의 친권까지 양보하고 집을 나간 건 판결 선고로부터 정확히 반년 후의 일이었다.

 

미야베 미유키 -불문율

 

 

그로부터 채 석 달이 되지 않았다. 하시바가 반장을 처음 '방문'하고부터 아직 두 달도 지나지 않았다.

 

재판할 때부터 줄곧 눈에 띄지 않게 바의 처지를 염려했던 반장은 하시바가 처음 찾아왔을 때 그가 이상해졌음을 깨달았다. 아니, 반장이 아니라 누구든 그렇게 생각했리라.

 

살인 사건을 보도한 신문 기사를 오려 와서는 '보세요. 또 부쿠로바라가 사람을 죽였어요. 어떻게 된 겁니까? 이런 녀석을 아직 내버려 두다니' 하고 소란을 떨었다.

 

마음을 쓰며 여러모로 놀란 반장이 신문 기사를 읽어 보니 혼자 사는 젊은 여성을 노린 흉악 범죄로 스물한 살의 여대생이 살해당했고 죽인 남자는 무직에 전과 3 범인 가나야 다쓰히코라는 남자였다.

 

가나야 다쓰히코, 하시바는 그걸 '무쿠로바라'라고 읽었다.

 

무쿠로바라는 하시바를 덮쳤다가 '살해당한' 젊은 각성제 중독자의 성이다. 한자로는 해골 들판이라고 쓴다. 이름은 正義一정의, 마사요시라고 읽지만 표면적인 뜻으로 보면 그야말로 '얄궂다'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우리 할아버지 얘기로는 조상님이 산 둘레로 땅을 아주 조금씩 띄엄띄엄 가지고 계셔서 모여 있는 땅이 세 곳 정도밖에 없었다고 해요. 모여 있는 땅의 넓이가 여섯 단, 아홉 단, 여섯 단이라 六九六原이란 이름을 썼답니다.”

 

언제부터인지 '무쿠로'에 ''라는 한자를 차용하게 되어 현재에 이른 것이 유래인 모양이다.

 

어쨌거나 충격적인 성이다. 이게 하시바의 마음에 깊이 새겨진 탓에 지금처럼 혼란이 일어나는 것이리라.

 

 

 

두 번째 '방문' 때에 하시바가 들고 온 건 다나시에서 일어난 강도 살인 사건 기사였다. 좀도둑이 강도로 돌변한 악질적인 범행이었는데 가족 세 명 그중 한 명은 아직 유아였다. 도망치기 전 집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인 사건이었다. 그런 주제에 빼앗은 돈은 고작 오만 엔. 수사를 맡은 지역 경찰도 처음에는 원한에 의한 범행을 강도로 위장한 게 아닐까 의심했을 정도였다.

 

다행히 범인이 단서와 물증을 잔뜩 남기고 가 준 덕에 체포까지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잡아 보니 서른 살의 전직 회사원이었는데 불경기 여파로 일시 해고당한 처지이기는 했으나 전과는 없었다. 피해자의 집을 노린 것도 본인의 말로는 '길을 가다가 문득'이었다고 한다.

 

범인의 이름은 가시마 가쓰지. 하시바는 그를 '보세요. 또 무쿠로바라예요' 하고 말했다.

 

세 번째인 유아 뺑소니 사건도, 네 번째인 연인 살인 사건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범인이 체포되고 이름이 신문에 보도된다.

 

하시바는 기사에 실려 있는 범인들의 이름을 '무쿠로바라'라고 읽어 버린다.

 

하시바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건 바로 깨달았지만 처음에는 자극하지 않도록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면서 범인의 이름이 '무쿠로바라'가 아니고 하시바의 마음이 그렇게 읽게 할 뿐이며, 문제의 무쿠로바라는 죽어서 이제 이 세상에 없다고 몇 번인가 설명해 보았지만 전부 호박에 침주기였다.

 

이렇게 해서 이미 죽은 '무쿠로바라'라는 남자가 연속해서 일으키는 '몇 가지 흉악 범죄’라는 것이 존재하게 되었다.

 

"반장님, 무서워요. 그렇잖아요? 무쿠로바라, 그런 무시무시한 남자가 여전히 체포되지 않고 차례차례 살인을 일으키니까요.”

 

반장은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호소하는 하시바의 얼굴을 뚱하게 바라보면서 '무쿠로바라라는 남자는 당신이 죽였어, 까먹었나?'라고 호통쳐 주고 싶은 걸 참은 적도 있다.

 

마음의 균형을 잃은 남자를 설득하거나 야단쳐 보았자 소용없다.

 

 

 

살인 사건은 전국 곳곳에서 매일같이 일어난다. 신문에 보도되는 건 그중 일부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그 수가 제법 된다.

 

기묘하게도 하시바는 신문에 실린 모든 살인 사건을 가리켜 무쿠로바라가 한 짓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중 하나를 골라서 오는 것이다.

 

그 탓에 매번 하시바가 찾아와 '반장님, 무쿠로바라가 또 저질렀어요!' 하고 보고하기 시작하면, 반장은 과연 이번에는 어떤 사건을 말하는지 얘기를 맞추는 데 애썼다. 하시바가 먼저 신문에서 자른 기사를 보여 주면 얘기가 빠르겠지만 좀처럼 그렇게 되지 않는 탓에 처음에는 떠보면서 맞장구를 쳐 주어야 한다. 하시바가 뭘 가지고 '이건 무쿠로바라 사건이고 저건 아니고 하며 판정을 내리는지 근거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놀라거나 어이없어하거나, 실소하며 적당히 상대해 주기란 쉽다. 하지만 반장을 찾아와 업무를 방해했다며 꼬박꼬박 사과하고 진심으로 벌벌 떨면서 무쿠로바라 연쇄 살인을 얘기하는 하시바를 보는 사이 가만두면 안 되겠다 싶어졌다.

 

“마음을 치료하는 의사에게 진찰이라도 받게 해야 할까."

 

아키야마에게 그런 얘기를 해 본 적이 있다. 반장의 부하 중에서 가장 젊고 부잣집 출신으로 '자극적이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경찰에 들어왔다'는 것치고는 별다른 고생도 없이 사복형사가 된 젊은이는 근심하는 반장의 얼굴에 대놓고 웃음을 터뜨리며 '그런 짓 해도 소용없어요. 그 아저씨는 이제 가망이 없어요. 내버려 두시면 되잖습니까?' 하고 말했다.

 

“하지만... 가엾잖아."

 

"세상 사람들을 일일이 가여워하다가는 저희 몸이 견디지 못해요. 적어도 저는요. 마더 테레사가 아닌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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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테레사 정도는 아닐지언정 아직 아키야마만 한 나이였을 무렵, 마쓰카와 사건 1949년 마쓰카와에서 레일 손상으로 열차가 탈선했다. 검찰은 도시바사와 국철 노조원이 범인이라고 밝혔으나 항소 과정에서 검찰이 피고인들의 무죄를 증명하는 자료들을 숨기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검찰이 좌파와 노조를 탄압하기 위해 일으킨 사건이라는 음모론이 강하다의 피고들을 위해 분골쇄신한 작가 히로쓰 가즈오가 변호사도 뭣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까지 열심인가 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당신은 다른 사람이 발을 밟힌 걸 보고 아프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하고 되받아쳤다는 일화를 듣고 순수하게 감동했던 반장은 아무리 해도 아키야마처럼 딱 잘라 떼 버릴 수 없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까닭에 반장의 머리에서 하시바의 망가져 버린 인생과 산산조각 난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 까다로운 심리학 책을 사서 읽어보기도 했다. 반장 같은 초보자들을 위해 나온 책에는 이런 특수한수우에 대한 고찰은 눈에 띄지 않았고, 전문가가 전문가용으로 쓴 책은 배운 게 없는 반장이 감당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다만 최근 들어 나름대로 생각하는 바는 있었다.

 

하시바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게 아닐까.

 

법적으로도 정당방위로 인정받았다. 자신은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괜찮다고 스스로 타이른다. 그러나 실제로 가정은 붕괴했고 직장도 잃었다. 지금까지 인생에서 쌓아 온 모든 걸 사건 때문에 잃고 말았다. 자신은 피해자다…. 그렇게 생각하는 반면 이 손으로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았다는 기억이 마음을 들볶았다.

 

그런 갈등 속에서 '나는 잘못이 없다 하지만 사람을 죽였다. 아니, 하는 수 없었다'라는 음울한 회전목마 등 위에 올라탄 채 흔들흔들 빙글빙글 돌다 보니 하시바의 마음은 막다른 곳으로 내몰렸고, '내가 무쿠로바라를 죽인 건 녀석이 정말로 정말로 나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무시무시한 남자였기 때문이다'라는 사실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바깥에서 확인하는 걸로 도망칠 길을 찾아낸 게 아닐까.

 

그래서 신문 지면에 흉악범의 발자취를 확인할 때마다 '봐, 또 무쿠로바라가 사람을 죽였어'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건 '무쿠로바라는 아직 살아 있다. 나는 녀석을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로도 이어진다.

 

하시바는 지금 서로 모순된 두 교각 위에 위태로운 꼴로 올라탄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마음 밑바닥보다 더 깊숙한 곳, 자신도 의식하지 않는 부분이 하시바의 제정신이 흘수선이하로 침몰해 버리는 걸 간신히 저지하고 있는 것이리라.

 

어디까지나 반장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하시바의 실제 정신상태와 그리 동떨어져 있는 얘기 같지는 않다. 하지만 만약 정말 저런 상태라면, 마음에 자리 잡은 뿌리 깊은 죄책감을 없애지 않는 한 하시바는 다시 일어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반장은 끝없이 우울해졌다. 그 탓인지 최근에는 몸 상태도 좋지 않다. 특히 위가 그랬다. 때때로 위 자체가 종양으로 변해 버렸나 싶을 정도로 격하게 아프곤 했다.

 

'이래서야 오래 살지는 못하겠군.'

 

그것 또한 기운 빠지는 감개였다.

 

미야베 미유키 -불문율

 

 

그날 밤, 반장이 퇴근할 무렵 기무라라는 신문 기자가 불쑥 찾아왔다. 관할 내에 있는 전국지 지국의 데스크인 남자다. 알고 지낸 지 벌써 십 년이 넘었다. 다행히 반장의 관할은 도내에서도 비교적 평온한 곳으로 살인 사건은 좀체 일어나지 않아서 특종을 잡으려고 야습이나 새벽 기습을 하는 게 아니라 개인적인 교류에 가까운 태평한 교제를 이어왔다.

 

하시바의 '방문' 뒤라서 위 아래쪽에 욱신욱신 통증을 느끼기 시작하던 반장은 술친구의 얼굴을 보고 기분이 편해졌지만 술은 피하자고 생각했다.

 

민감한 기무라는 그런 반장의 안색을 금세 읽었다.

 

"내키지 않는 얼굴이네요."

 

반장은 애매하게 웃어넘겼다. 아무리 속속들이 아는 사이라고 재도 상대는 매스컴이다. '사실은' 하고 하시바 문제를 털어놓았다가는 어떻게 부풀려서 기사가 나 버릴지 알 수 없다. 침묵은 금이다.

 

대신 문득 떠오른 김에 물어보았다.

 

“이봐, 이케부쿠로 러브호텔 살인 범인이 잡혔지?"

 

“네. 피해자의 이거예요."

 

기무라는 엄지손가락을 치켰다.

 

"그게 왜요?"

 

“이거였다면"

 

반장도 엄지손가락을 세우면서 물었다.

 

"왜 죽였지? 헤어지자고 했다가 싸웠나?"

 

뜻밖에 기무라는 살짝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뇨, 그게 말이죠. 저도 경시청 출입 기자 녀석들에게 대충 들은 정도지만 관할에서도 속을 썩는 모양이에요."

 

"대체 왜?"

 

"동기가 아무래도 확실하지 않거든요."

 

"동기?"

 

반장은 마시다 만 잔을 옆에 두었다.

 

"그런 거야 빤하지 않나.”

 

기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그렇죠. 범인인 용의자와 피해자는 벌 써오 년 넘게 사귀었다더군요. 사건이 있었던 당시에도 이렇다 할 말썽은 안고 있지 않았고요."

 

"정말인가?"

 

“적어도 남자는 그렇게 진술했다네요. 여자를 죽일 이유가 없었죠. 돈 문제도 나오지 않은 모양이고, 그렇게 죽여 버린 건 무슨 마가 들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요."

 

“오래 사귀었다면 왜 러브호텔 같은 데 있었지?"

 

 

 

“여자가 유부녀였거든요."

 

반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 역시 그게 동기 아니야?"

 

“네, 뭐…. 어쨌든 남자는 여자를 죽일 이유 따위 없었다고 우기고 있다나 봐요. 사건 당일에도 이렇다 할 말다툼조차 하지 않았답니다. 다만 그날은 어쩐지 여자의 복장이나 화장이 화려해 보이고 칠칠치 못한 게 못 견디게 마음에 들지 않았대요."

 

기무라는 얼음을 넣어 연해진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고서 느닷없이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용의자는 자영으로 중고차 딜러를 하는데요. 지금 불경기잖아요. 장사가 바닥을 쳐서 심적으로 아주 지친 상태였던 것 같아요. 게다가 위궤양을 앓고 있는데, 본인은 암이 아닐까 걱정했다더군요. 인생이란 풀리지 않는 일이 하나 생기면 연쇄 반응으로 좋지 않은 일만 떠올리게 되는 걸까요. 아직 모르겠지만 공판에 들어가면 정신 감정 문제가 나올지도 몰라요. 범행 당시 알코올도 들어갔던 것 같고."

 

반장은 잔 내용물을 재떨이 안에 부어 버렸다. 위가 욱신거리며 아팠다.

 

기무라와 둘이서 뜨거운 오차즈케 따뜻한 차에 만 밥을 후루룩 먹고서 돌아갈 무렵 반장의 머리에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이봐, 그러고 보니 자네 정보 수집력을 믿고 부탁하고 싶은 일이 좀 있는데.”

 

“어이쿠, 무섭네요. 뭡니까?"

 

“어떤 사건에 대해 오늘 밤 나에게 얘기해 준 것처럼 정보를 모아주었으면 해."

 

반장은 여태껏 하시바가 가져온 '무쿠로바라 연쇄 살인 사건'의 나머지 네 개를 들어 보였다.

 

"뭡니까. 이건."

 

기무라는 메모를 하면서 의아한 얼굴을 했다.

 

"반장님 관할 사건도 있지만."

 

"응. 내부에서 이것저것 들추고 다니면 시끄러워지니까. 부탁해도 되겠나?"

 

"어렵지 않죠. 하지만…."

 

기무라는 네 구획 앞의 집 부엌에서 풍기는 꽁치 냄새를 맡은 길고양이 같은 눈초리였다.

 

"뒤에 뭔가 있습니까?"

 

“그럴 리가 있나.”

 

반장은 강하게 부정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연극이 서투르다 싶어서 변명을 더했다.

 

“개인적인 호기심이야. 사실 언젠가는 자신의 경찰사 같은 얘기를 써 보고 싶어서. 그때를 위한 자료지."

 

“호오, 완성되면 알려 주세요. 출판사를 소개해 드립죠."

 

“아주 먼 미래의 얘기지만 말이야."

 

그렇게 말했을 때 메슥거리는 느낌이 들면서 또 위가 욱신거렸다. 반장은 기무라가 등을 돌리고 나갈 때까지 억지웃음을 짓는 게 한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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