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본문학

시나가와 원숭이, 도쿄기담집,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소설,

by SpiderM 2024. 4. 8.
반응형

이름을 훔치는 시나가와 원숭이를 검거하다

 

방 안쪽에 또 하나의 문이 있고 사쿠라다가 그 문을 열었다. 그리고 벽에 붙은 스위치를 눌러 불을 켰다. 안을 한 바퀴 점검하더니 이쪽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 없습니다. 들어오세요."

우선 사카키 과장이 들어가고 그다음에 사카키 데쓰코, 그리고마지막으로 미즈키가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창고 같은 곳이었다.가구는 없었다. 

 

다만 작은 의자가 하나 있고 그 의자에 원숭이 한마리가 앉아 있었다. 

 

원숭이 치고는 상당히 몸집이 큰 편일 것이다. 성인이 된 인간보다는 작지만 초등학생보다는 크다. 털은 보통 일본원숭이보다 약간 긴 것 같고 군데군데 회색 털이 섞여 있었다. 나이는 잘 모르겠으나 그리 어리지는 않은 것 같았다. 원숭이는 앞다리와 뒷다리가 목제의자에 가느다란 밧줄로 꽁꽁 묶여있었다. 긴 꼬리는 끝이 바닥에 축 늘어졌다. 미즈키가 방으로 들어가자 원숭이는 그녀를 흘끗 쳐다보더니 시선을 발밑으로 떨구었다.

 

도쿄기담집 - 시나가와 원숭이



"원숭이?" 미즈키는 말했다.

“그렇답니다." 사카키 데쓰코가 말했다. "원숭이가 당신 집에서 이름표를 훔쳐간 거예요."

“그럼 저 원숭이가 이름표를 훔쳐간 거군요." 미즈키는 말했다."그렇답니다. 집에 몰래 들어가 벽장 안의 상자에서 이름표를훔쳐냈어요. 그게 일 년쯤 전이에요. 당신이 이름을 잊어버리기시작한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죠?"

“네, 분명 그 무렵부터였어요."

“죄송합니다.” 원숭이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굵직하고 낮은음성이었다. 거기에서는 어떤 종류의 음악성까지 감지되었다.

"말을 할 줄 알아요?" 미즈키는 아연해서 말했다.

"네, 말을 할 줄 압니다." 원숭이는 표정을 바꾸지 않고 말했다.“그밖에도 사과드려야 할 일이 있습니다. 댁에 이름표를 훔치러갔을 때, 바나나 두 개를 실례해버렸습니다. 이름표 말고는 아무것도 손대지 않으려고 했는데 제가 그때 너무 배가 고파서요. 나쁜 짓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식탁 위에 있던 바나나 두 개를 먹어버렸어요. 정말로 맛있게 보여서 그만."

"이런 뻔뻔한 녀석." 사쿠라다가 검은 경봉을 자신의 손바닥에탁탁 내리치며 말했다. “또 다른 것도 훔쳐갔을지 몰라요. 잠깐손 좀 봐줄까요?”

"아이, 그럴 것까지야 있나." 사카키 과장이 만류했다. "바나나건도 정직하게 제 입으로 털어놨고, 보아하니 그리 흉악한 원숭이는 아닌 것 같아. 일이 좀더 명확해질 때까지는 너무 거칠게 나가지 말자고. 혹시라도 구청 안에서 동물에게 폭력을 휘두른 게 알려지면 일이 복잡해져.”

“왜 이름표 같은 걸 훔쳐간 거야?" 미즈키는 원숭이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이름을 훔치는 원숭이에요." 원숭이는 말했다. "그게 내 고질병입니다. 이름이 보이면 훔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어요. 물론 아무 이름이나 다 훔치는 건 아닙니다. 끌리는 이름이 있어요. 유난히 끌리는 이름. 그런 이름을 보면 어떻게든 손에 넣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집에 몰래 들어가 그런 이름을 훔쳐옵니다. 나쁜 일이라는 건 잘 알지만 나도 그런 나를 막을 수가 없어요."

"학교 기숙사에서 마쓰나가 유코의 이름표를 훔치려고 했던 것도 너였어?"

“네, 그렇습니다. 나는 거의 절망적일 만큼 마쓰나가 씨를 연모했어요. 일개 원숭이로서 그토록 애태워 사랑한 일은 그전에도 그후에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쓰나가 씨를 내 것으로 만드는 건 불가능하지요. 어쨌거나 나는 원숭이니까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일이죠. 그래서 어떻게든 그 사람의 이름을 훔쳐내기로 했어요.그나마 이름만이라도 내가 갖고 싶었던 거예요. 그 사람의 이름을 갖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한없이 가득 채워졌을 거예요. 나 같은 원숭이가 그 이상 뭘 바라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소망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그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어요."

"혹시 너, 마쓰나카 유코가 자살한 일과 관계가 있어?"

“아니요." 원숭이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그사람이 자살한 건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요. 마쓰나카 씨는 옴짝달싹 못할 마음속 어둠을 떠안고 있었어요. 아마 어느 누구도그 사람을 구할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 집에 그녀의 이름표가 있다는 걸 어떻게 최근에 알아냈지?"

"거기에 가닿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지요. 마쓰나가씨가 사망한 뒤, 나는 즉시 이름표를 손에 넣으려고 했어요. 누군가 그 이름표를 가져가기 전에 어떻게든 내 손에 넣으려고 하지만 이름표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어요. 그게 어디로 갔는지, 어느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 나는 사방팔방으로 알아봤어요. 몸이 가루가 되도록 온갖 곳을 찾아다녔어요. 하지만 이름표의 행방은 알수 없었습니다. 마쓰나가 유코 씨가 설마 당신에게 이름표를 맡기러 갔을 줄은 그때는 생각도 못했어요.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래, 맞아." 미즈키는 말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퍼뜩 생각이 났어요. 혹시 오자와 미즈키 씨의 손에 그녀의 이름표가 건너간 게 아닌가 하고, 그게 작년 봄의 일이었습니다. 오자와 미즈키 씨가 결혼해서 이름이 안도 미즈키씨로 바뀌었고 시나가와 구의 맨션에 사신다는 것을 알아내기까지 그로부터 다시 한참이나 시간이 걸렸어요. 그런 걸 알아보려고할 때 내가 원숭이라는 건 아주 불편한 일이죠. 하지만 어쨌든 그렇게 해서 댁에 도둑질을 하러 가게 된 겁니다."

"하지만 그 참에 왜 내 이름표까지 가져갔지? 마쓰나가의 이름표뿐만 아니라 내 것까지 그 바람에 나는 상당히 힘들었어. 내 이름을 알 수 없게 되었다고."

"정말 죄송합니다.” 원숭이는 부끄러운 듯 머리를 떨구었다.“마음이 끌리는 이름을 보면 나도 모르게 훔치게 됩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얘기지만 오자와 미즈키 씨의 이름표도 나의 조그만 가슴을 강하게 뒤흔들었어요. 앞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이건 고질병입니다. 나 스스로도 그 충동을 억누를 수 없어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손을 대게 돼요. 큰 피해를 드린 점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대도시에는 우리가 살아갈 만한 곳이 없어요. 나무숲이 적으니 한낮에는 그늘을 찾기도 쉽지 않아요. 게다가 땅 위로 나가면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나를 잡으려고 합니다. 어린애들은 새총이며 BB탄을 쏘아대고 반다나를 두른 대형견이 앞다투어 쫓아와요. 나무 위에서 쉬고 있으면 텔레비전 방송국 카메라가 나와서 조명을 들이대지요. 잠시도 마음을 놓을 틈이 없어요. 그러니 지하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어요.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원숭이는말했다.

"제발 부탁입니다. 나를 죽이지 말아주세요." 원숭이도 꽁꽁 묶인 채 머리를 깊이 조아리며 애원했다. “나라고 늘 못된 짓만 하는 건 아니에요. 분명 내가 한 짓은 나쁜 일이었어요.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인간님께 큰 피해를 끼쳤습니다. 하지만요, 억지를부리려는 건 아니지만, 사실 그 일도 긍정적인 면이 전혀 없는 건아니에요."

사람의 이름을 훔치는 자



“네, 말씀드리지요. 나는 분명 인간님의 이름을 훔쳤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름에 딸려 있는 부정적인 요소 또한 조금쯤은가져오게 됩니다. 이건 내 자랑 같지만, 만일 내가 그때 마쓰나가유코 씨의 이름을 훔쳐내는 데 성공했더라면, 이건 어디까지나 작은 가능성이지만, 어떻든 마쓰나가 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고 넘어갔을 수도 있어요."

"그건 왜지?" 미즈키가 물었다.

"만일 내가 마쓰나카 씨의 이름을 훔치는 데 성공했더라면 나는 그것과 함께 그녀의 마음속에 숨어든 어둠도 얼마간 가져왔을거예요. 나는 그것을 이름과 함께 지하세계로 가져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자꾸 그런 생각이 듭니다." 원숭이는 말했다.

원숭이를 향해 캐물었다. “네가 이름을 훔쳐낼 때 거기에 있는 좋은 것과 함께 나쁜 것도 동시에 떠안고 간다는 거야?"

“네, 그렇습니다.” 원숭이는 말했다. 

 

“좋은 것만 쏙쏙 뽑아갈 수는 없으니까요. 거기에 나쁜 것이 포함되어 있으면 우리 원숭이는 그것도 받아갑니다. 모두 통째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제발 부탁입니다. 나를 죽이지 말아주세요. 나는 못된 버릇을 가진 한심한 원숭이지만, 그렇다고 여러분께 도움이 되는 면이 전혀 없지는 않아요."

"그럼 내 이름에는 어떤 나쁜 것이 있었어?" 미즈키는 원숭이에게 물었다.

"내 입장에서는 그런 말을 본인 앞에서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원숭이는 말했다.

"아니, 알려줘." 미즈키는 말했다. “만일 분명하게 그걸 내게 알려주면 너를 용서해줄게. 용서해주라고 여기 있는 분들께 내가 대신 부탁할게."

"정말입니까?"

“그래서 내 이름에는 어떤 나쁜 것이 딸려 있었어?" 미즈키는 원숭이의 작고 붉은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내가 그 말씀을 드리면 미즈키 씨는 상처를 입을지도 모르는데요."

"괜찮으니까 말해봐.”

원숭이는 난처한 듯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마의 주름이 좀더 깊어졌다. “그래도 듣지 않으시는 게 좋을 텐데요."

"괜찮아. 나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알고 싶어."

“알겠습니다.” 원숭이는 말했다. 

 

“그러면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미즈키 당신의 어머니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신을 사랑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언니 쪽도 마찬가지예요. 당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당신을 요코하마의 학교로 보낸 것은 골칫거리를 없애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당신의 어머니와 언니는 당신을 가능한 한 멀리 보내버린 것이지요. 당신의 아버지는 결코 나쁜 분은 아니지만, 애석하게도 소심한 성품이었어요. 그래서 당신을 지켜줄 수 없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당신은 어려서부터 누구에게도 충분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당신도 그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의도적으로 그걸 모른 척해왔지요. 그런 사실에서 눈을 돌려버리고,마음속의 작은 어둠 안에 쑤셔넣고 뚜껑을 닫아버린 채, 괴로운일은 생각하지 않도록, 안 좋은 일은 쳐다보지 않도록 하면서 살아왔어요. 부정적인 감정을 꾹꾹 억누른 채, 그리고 그런 방어적인 자세는 당신이라는 인간의 일부가 되어버렸어요. 그렇지요? 하지만 그로 인해 당신은 누군가를 진지하게, 무조건적으로 진심을 다해 사랑할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미즈키는 침묵하고 있었다.

"당신은 현재까지 별 문제 없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행복한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은 남편분을 깊이 사랑할 수 없어요. 그렇지요? 만일 자녀분이 태어나더라도 이대로 가면 똑같은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미즈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눈을감았다. 몸 전체가 스르르 풀려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살도 내장도 뼈도, 모두 낱낱이 흩어져버릴 것만 같았다. 자신이 숨을 쉬는 소리만 귀에 와닿았다.

헤어지는 참에 미즈키는 원숭이에게 마쓰나가 유코의 이름표를 건넸다.

“이건 내가 갖고 있는 것보다 네가 간직하는 게 좋을 것 같아."미즈키는 원숭이에게 말했다. “마쓰나가 유코를 좋아했잖아."

“네, 나는 그 분을 좋아했습니다."

"이 이름표, 소중히 간직해줘. 그리고 이제 다시는 다른 사람의 이름을 훔쳐서는 안 돼.”

"네, 이 이름표는 무엇보다 소중히 간직하지요. 그리고 도둑질도 딱 끊겠습니다.” 원숭이는 성실한 눈빛을 내보이며 약속했다.

"하지만 왜 마쓰나카 유코는 죽기 전에 나한테 이름표를 맡겼을까? 왜 그 상대가 나였던 거지?"

"그건 나도 모르겠어요." 원숭이는 말했다. "하지만 어찌됐건 그 덕분에 나와 미즈키 씨는 이렇게 만나고 이야기도 할 수 있었어요. 이것도 운명인 것이겠지요."

"괜찮아. 나도 이미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어. 언젠가는 내가 정면으로 마주했어야 할 일이야."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네요." 원숭이는 말했다.

"안녕." 미즈키는 원숭이에게 말했다. "이제 아마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 같구나.”

"미즈키 씨도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원숭이는 말했다. "나 같은 원숭이의 목숨을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글의 취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 기담집의 소개를 위해 일부만 발췌해 쓰여진 글입니다. 나머지 뒷 부분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 부분은 여러분들이 직접 구매하셔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내돈내산글입니다.

 

저작권은 비채출판사에 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