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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학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 소설 <하나레이 해변> 줄거리, 비채출판사

by SpiderM 2024.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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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의 아들은 열아홉 살 때 하나레이 해변에서 

커다란 상어의 습격을 받고 죽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상어에게 물려서 죽은 것은 아니다. 혼자 먼 바다로 나가 서핑을 하다가 상어에게 오른쪽 다리를 물어뜯겼고 그 충격으로 물에 빠져 죽은 것이다. 

 

 

비가 오는 날의 사치

 

 

 

그래서 정식 사망원인은 익사로 나와 있다. 서프보드도 거의 두 동강이 나게 물어 뜯겼다. 상어가 사람을 즐겨 잡아먹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살덩어리가 내는 맛은 어느 쪽인가 하면 상어의 기호에는 맞지 않았다. 한 입 베어 먹었다가도 대개는 실망해서 그냥 가버린다. 그래서 상어에게 습격을 받더라도 패닉 상태에만 빠지지 않으면 한쪽 팔이나 다리를 잃을 뿐, 살아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다만 그녀의 아들은 너무나 놀랐고 그래서 아마 심장발작 같은 것을 일으켜 대량의 바닷물을 마시고 익사했을 것이다.



사치는 호놀룰루의 일본 영사관으로부터 그 소식을 듣고 그만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머릿속이 텅 비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곳에 주저앉아 눈앞에 있는 벽의 한 점을 보고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렇게 하고 있었는지, 그녀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하고 항공사 전화번호를 찾아 호놀룰루행 비행기를 예약했다. 영사관에서 알려준 대로 아무튼한시라도 빨리 현지에 가서 그게 정말로 자신의 아들인지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쩌면 사람을 착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필 연휴기간이었던 탓에 당일과 그다음 날의 호놀룰루 항공편은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어떤 항공사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사정을 얘기하자 유나이티드 항공사의 담당자가 “일단 지금 서둘러 공항으로 나오십시오. 어떻게든 좌석을 만들어봅시다"라고 말해주었다. 간단히 짐을 챙겨 나리타공항으로달려가자 여성 담당자가 기다리고 있다가 비즈니스클래스 티켓을그녀에게 내주었다.

"현재 빈 좌석은 이것밖에 없어요. 하지만 이코노미클래스 요금만 내셔도 돼요." 그녀는 말했다. “참으로 힘드시겠지만, 부디기운내세요."

고맙습니다, 정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라고 사치는 감사 인사를 했다.

호놀룰루 공항에 도착했을 때, 사치는 너무도 황망하게 달려오는 바람에 영사관 직원에게 도착 시각 알려주는 걸 깜빡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호놀룰루의 일본 영사관 직원이 그녀를 데리고 카우아이 섬에 가기로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야 연락해서 약속을잡는 것도 너무 번거로워서 그길로 자기 혼자 카우아이에 가기로했다. 현지에 가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비행기를 갈아타며 카우아이 섬에 도착한 것은 점심 전이었다.

 

그녀는 공항 에이비스에서렌터카를 빌려 우선 가까운 경찰서로 갔다. 그리고 아들이 하나레이 해변에서 상어의 습격을 받아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도쿄에서 찾아왔노라고 말했다. 안경을 쓴 반백의 경관이 냉장창고 같은 시신안치소에 그녀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한쪽 다리를 뜯어먹힌 아들의 사체를 보여주었다. 오른쪽 다리가 무릎 조금 위쪽까지 사라지고 없었다. 단면에는 허연 뼈가 애처롭게 드러나 있었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그녀의 아들이었다. 얼굴에는 표정이랄 만한 게 없어서 그저 별일 없이 푹 잠든 것처럼 보였다. 죽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았다. 아마 누군가 표정을 가다듬어준 것이리라. 어깨를 잡고 흔들면 투덜거리면서 부스스 일어날 것 같았다. 예전에 매일 아침 그랬던 것처럼.

사무실로 나와서 그 사체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서류에 사인했다. 아드님의 시신을 어떻게 하실 예정입니까, 라고 경관이 물었다. 잘 모르겠다, 라고 그녀는 말했다 이런 경우, 대개는 어떻게들 하는가요? 화장해서 재를 들고 가시는 것이 이런 경우의 가장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라고 경관은 말했다. 사체를 그대로 일본까지 운구하실 수도 있지만, 그건 수속도 번거롭고 비용도 많이 듭니다. 혹은 카우아이의 묘지에 매장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경관은 그렇게 설명했다.

화장해주세요. 유골을 도쿄에 갖고 가겠습니다, 라고 사치는 말했다. 아들은 이미 죽어버렸다. 어떻게 해도 살아 돌아올 가망은 없다. 재든 뼈든 사체든 무슨 차이가 있을까. 그녀는 화장 허가 신청서에 사인한 다음, 비용을 지불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밖에 없는데요." 사치는 말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도 괜찮습니다." 경관은 말했다.

내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로 아들의 화장 비용을 지불하는구나. 라고 사치는 생각했다. 그것은 그녀에게는 무척 비현실적인 일로 생각되었다. 아들이 상어의 습격을 받아 죽었다는 것과 똑같은 만큼 현실감이 빠져 있었다. 화장은 다음 날 오전 중에 치러진다고 했다.

“부인은 영어를 잘하시는군요." 담당 경관은 서류를 정리하며 말했다. 사카타라는 이름의 일본계 경관이었다.

“젊은 시절에 한동안 미국에서 살았어요." 사치는 말했다.

"아, 그렇군요." 경관은 말했다. 그러고는 아들의 짐을 내주었다. 의류, 여권, 귀국용 비행기 티켓, 지갑, 워크맨, 잡지, 선글라스, 화장품 가방. 모두 작은 보스턴백에 담겨 있었다. 사치는 그런 자질구레한 물품을 목록으로 만든 인수증에도 사인해야만 했다.

"다른 자녀분이 있으십니까?" 경관이 물었다.

"아뇨, 아들 하나뿐이에요." 사치는 대답했다.

"남편분은 함께 오시지 않았나요?"

"남편은 꽤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경관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저희가 도와드릴 일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아들이 죽은 장소를 알려주세요. 머물던 곳도, 숙박비를 내야할 것 같아서요. 그리고 호놀룰루의 일본 영사관에 연락하고 싶은데 전화를 좀 빌릴 수 있을까요?"

경관은 지도를 가져와 아들이 서핑하던 장소와 숙박한 호텔의 위치에 마커로 표시해주었다. 그녀는 경관이 추천해준 시내의 자그마한 호텔에서 묵기로 했다.

“제가 한 가지, 부인에게 개인적인 부탁이 있어요." 사카타라는 초로의 경관은 헤어지는 참에 사치에게 말했다. "이곳 카우아이 섬에서는 이따금 자연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갑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이곳의 자연은 참으로 아름답지만 동시에 때때로 거칠고 치명적인 것이 되기도 하지요. 우리는 그런 가능성과 함께 여기서 살아갑니다. 아드님의 일은 참으로 유감입니다.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지만 부디 이번 일로 우리 섬을 원망하거나 증오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부인 입장에서는 주제넘은 말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제가 드리는 부탁이에요."

사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외삼촌은 1944년에 유럽에서 전사했습니다. 독일과 인접한 프랑스 국경 근처였어요. 일본계 미국인으로 구성된 부대의 일원으로 나치에 포위된 텍사스 부대를 구출하러 갔다가 독일군의 직격탄에 맞아 사망했죠. 뒤에 남은 것은 인식표와 조각난 살덩어리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것이 눈 속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는 군요. 어머니는 오빠를 깊이 사랑했기 때문에 그 이후로 사람이 홱 변해버렸습니다. 나는 물론 변해버린 어머니의 모습밖에 알지 못합니다. 그건 매우 가슴 아픈 일이지요."

경관은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저었다.

“대의가 어떻건 전쟁에서의 죽음은 양측이 각각 갖고 있는 분노나 증오에 의해 초래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아요. 자연에 내 편 네 편 따위는 없습니다. 부인께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겠지만, 가능하다면 그렇게 생각해주세요. 아드님은 대의나 분노나 증오 따위와는 상관없이 자연의 순환 속으로 돌아간 것이라고."

 

일본의 단카이 세대

 

 


다음 날, 화장을 마치고 작은 알루미늄 유골 항아리를 받아든 그녀는 차를 운전해 노스쇼어 안쪽에 자리한 하나레이 해변까지 갔다. 경찰서가 있었던 리후에 시내에서 그곳까지는 한 시간 정도 걸렸다. 몇 년 전에 들이닥친 거대한 태풍 탓에 섬의 수목은 대부분 크게 변형될 만큼 타격을 입었다. 지붕이 날아가버린 목조가옥의 흔적도 군데군데 눈에 들어왔다. 산의 형태가 변해버린 곳도 있었다. 자연이 혹독한 땅인 것이다.

반쯤 졸음에 빠진 듯한 조그만 하나레이 마을을 지나 조금 더 들어간 곳에 아들이 상어의 습격을 받은 서프 포인트가 있었다. 그녀는 인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모래사장에 앉아 다섯 명 남짓한 서퍼가 파도 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보드를 붙잡고 먼 바다에 둥둥 떠 있었다. 힘찬 파도가 밀려오면 그것을 타고 도움닫기로 보드 위에 올라서서 물결을 타고 해안 가까이까지 온다. 그리고 파도가 힘을 잃으면 그들도 균형을 잃고 물속에 빠진다. 그러고는 보드를 찾아들고 패들링으로 파도를 누비며 다시 먼 바다로 돌아간다. 그것의 반복이었다. 사치는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 사람들은 상어가 무섭지도 않은가. 아니면 내 아들이 며칠 전에 이 자리에서 상어 때문에 죽었다는 얘기를 듣지 못한 것일까.

사치는 모래사장에 앉아 그런 광경을 한 시간쯤 무심히 바라보았다. 윤곽이 잡히는 생각은 하나도 할 수 없었다. 무게를 지닌 과거는 어디론가 어이없이 사라져버렸고 미래는 아득히 머나먼 어둠침침한 곳에 있었다. 과거도 미래도 지금의 그녀와는 거의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그녀는 시시각각 이행하는 현재라는 시간 속에 주저앉아 파도와 서퍼들이 만들어내는 단조로운 반복의 풍경을 그저 기계적으로 눈으로 따라잡고 있었다.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이구나. 그녀는 어느 시점에 문득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아들이 묵었던 호텔에 찾아갔다. 서퍼들이 머물다 가는작고 지저분한 호텔, 손질하지 않은 정원이 있고, 장발에 반 벌거숭이의 젊은 백인 둘이 캔버스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롤링록 초록색 술병이 발밑의 잡초 속에 몇 개나 나뒹굴고 있었다. 한 사람은 금발이고 한 사람은 흑발이었지만 그것만 빼면 둘다 생김새도 비슷하고 키며 몸집도 거기서 거기였다. 똑같이 양쪽팔뚝에 요란한 문신을 했다. 마리화나 냄새도 희미하게 났다. 거기에 개똥 냄새가 섞였다. 사치가 다가가자 그들은 경계의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 호텔에 묵었던 내 아들이 사흘 전에 상어의 습격을 받아 죽었는데." 사치는 말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거, 데카시 얘기?"

“그래, 데카시." 사치는 말했다.

“아, 쿨한 녀석이었는데.” 금발 쪽이 말했다. "참 안됐어."

"그날 아침, 으응, 그러니까 그게, 거북이가 해변으로 아주 많이 올라왔어." 흑발이 축 늘어진 목소리로 설명했다. “그 거북이들을 쫓아서 상어가 왔어. 아, 평소에는 그 녀석들, 서퍼를 공격하지 않아, 우리, 상어하고 꽤 사이좋게 지내. 근데..... 으응, 뭐랄까, 상어도 별별 놈이 다 있으니까.”

호텔 숙박비를 내러 왔노라고 그녀는 말했다. 분명 미지불금이 있을 것 같아서.

금발이 얼굴을 찌푸리며 맥주병을 허공에 대고 흔들었다. "이봐요, 아줌마, 진짜 뭘 모르시네. 이곳은 선불 아니면 손님을 받지 않는 곳이야. 어쨌든 가난뱅이 서퍼를 상대로 장사하는 싸구려 호텔이잖아. 미지불금이라는 건 있을 수 없어."

“아줌마, 으응, 데카시의 서프보드 가져갈 거야?" 흑발이 말했다. "상어란 놈이 씹어먹어서 너덜너덜………… 반으로 쪼개지긴 했지만, 딕 브루어 중고품, 경찰이 가져가지 않았으니까, 으응, 아직 저기 어딘가에 있을 거 같은데."

사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보고 싶지도 않았다.

"참 안됐어." 금발이 다시 똑같은 소리를 했다. 다른 인사말은 생각나지 않는 모양이다.

"쿨한 녀석이었어." 흑발이 말했다. "오케이였어. 서핑 실력도 꽤 좋았어. 으응, 그렇지, 바로 전날 저녁에도 함께………… 여기서 데킬라를 마셨어. 으응."

사치는 결국 일주일 동안, 하나레이 마을에 머물렀다. 그나마 가장 변변해 보이는 코티지를 빌려 거기서 간단히 밥을 해먹으며 지냈다. 그녀는 일본에 돌아가기 전에 어떻게든 자신을 되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비닐의자와 선글라스와 모자와 선크림을 샀고, 날마다 모래사장에 나가 앉아서 서퍼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하루에 몇 번이나 비가 내렸다. 그것도 대야를 뒤엎은 것처럼 세찬비였다. 가을철 카우아이의 노스쇼어는 날씨가 불안정한 것이다. 비가 내리면 차 안에 들어가 비를 바라보았다. 비가 그치면 다시 해변에 나가 바다를 바라보았다.



 
도쿄기담집
“무한한 감성과 깊이에 매료되었다.” _이창동 감독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 소설집 《도쿄기담집》의 수록작 <하나레이 해변>이 영화화되어 한국의 팬들을 찾는다. 영화 제목은 <하나레이 베이>! 비채에서는 영화 <하나레이 베이>의 한국 개봉을 기념하여, 영화 포스터를 수록한 스페셜 커버를 기획, 기존 커버 위에 덧씌운 ‘하나레이 에디션’을 한정 수량 준비했다. 짙은 에메랄드 빛 바다 풍경에 원작소설의 깊은 감동을 오롯이 담아낸 영화 <하나레이 베이>는 일본의 연기파 국민배우 요시다 요 주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히트 메이커 오가와 신지 제작, <어느 가족>의 콘도 류토 촬영감독까지, 화려한 제작진과 출연진의 총출동 소식에 국내외 관객과 평단의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다. 제38회 하와이국제영화제 스포트라이트 온 재팬에 노미네이트되었고, 2019년 전주국제영화제 및 무주산골영화제에 초정작으로 선정되었다. 상실과 기다림 그리고 상실 이후 회복의 메시지를 가장 매혹적으로 그리는 거장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 팬들에게 그리고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독자들에게 <하나레이 해변>의 책과 영화 사이를 느긋하게 걸어보시길 권한다.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출판
비채
출판일
2014.10.11

 

 

 

 

도쿄 기담집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5권. 평범한 등장인물들이 여느 날과 같은 일상에서 맞닥뜨린 트릿한 순간 혹은 빛과 온기가 결락된 틈에서 포착해낸 불가사의하면서도 기묘하고, 있을 것 같지 않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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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취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 기담집의 소개를 위해 쓰여진 글입니다. 나머지 뒷 부분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 부분은 여러분들이 직접 구매하셔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내돈내산글입니다.

 

저작권은 비채출판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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