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본문학

<우연 여행자> 줄거리,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집-도쿄 기담집 중

by SpiderM 2024. 4. 8.
반응형

나 무라카미는 이 글의 필자다.

 

 

우연 여행자

 

 

이 이야기는 거의 다 삼인칭으로 서술되었지만, 첫머리에 화자가 먼저 얼굴을 내밀게 되었다. 옛날식 연극처럼 커튼 앞에 나서서 몇 마디 해설을 하고 인사한 다음에 물러날 것이다. 아주 잠깐이면 끝날 테니 잠시만 함께 해주셨으면 한다.

 

왜 내가 여기에 얼굴을 내밀었는가 하면, 과거에 내 신상에 일어났던 몇 가지 '신기한 일'에 대해 직접 말해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종류의 일들이 내 인생에서는 자주 일어났다. 어떤 것은 의미를 가진 사건이었고 내 삶의 존재 방식에 적잖이 변화를 몰고 오기도 했다. 또 어떤 것은 별 볼일 없는 소소한 사건이어서 그것에 의해 내 인생이 딱히 영향을 받는 일은 없었다...... 아마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그런 쪽의 체험담을 꺼내놓으면 반응이 별로 탐탁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 “아, 그런 일이다 있군요"라는 정도의 미적지근한 느낌으로 대화가 파해버린다. 그 얘기를 계기로 이야기에 흥이 오르는 일이 없다. “나도 그 비슷한 경험이 있었는데"라는 식으로 화제가 가지를 치지도 않는다. 마치 엉뚱한 수로로 이끌려간 용수처럼 내가 꺼낸 이야기는 이름 모를 모래땅으로 스르륵 빨려든다. 짧은 침묵이 있다. 그러고는 누군가가 전혀 다른 화제를 꺼낸다.

 

 

내가 말하는 방식에 뭔가 문제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잡지의 에세이에 그 비슷한 것을 써봤다. 글로 써내면 사람들이 좀 더 성의껏 귀를 기울여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쓴 그 글을 거의 아무도 믿지 않는 것 같았다. "그거, 어차피 지어낸 얘기지요?"라는 말을 들은 적도 몇 번 있었다. 아무래도 소설가라고 하니까 내가 말하는(써내는 것은 모두 많든 적든 '지어낸 이야기'로 간주)해버리는 모양이다. 나는 분명 픽션의 틀 안에서는 꽤 대담하게 이야기를 지어낸다(어쨌든 그게 픽션의 역할이니까). 하지만 그런 작업을 하지 않을 때는 일부러 별 의미도 없이 이야기를 지어내지는 않는다.

 

그런 이유로 이 자리를 빌려 말하자면 서론으로서,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신기한 일에 대해 짤막하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별볼일 없는 소소한 쪽의 체험만을 다룰 것이다. 내 인생을 바꾼 신기한 일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다가는 지면의 대부분을 다 써버릴 것 같으니까


 

1993년부터 1995년까지 나는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서 살았다.

 

초청작가 비슷한 자격으로 대학에 소속되어 <태엽 감는 새>라는 제목의 긴 소설을 쓰고 있었다. 케임브리지의 찰스스퀘어에는 '레거타 바'라는 재즈클럽이 있어서 거기에서 수많은 라이브 연주를 들었다. 적당한 크기의 편안한 재즈클럽이다. 이름있는 뮤지션도 자주 출연했고 요금도 그리 비싸지 않았다.

 

어느 날인가 피아니스트 토미 플래너건이 이끄는 트리오가 그곳에 출연했다. 아내는 그날 저녁에 뭔가 볼일이 있어서 나 혼자 들으러 갔다. 토미 플래너건 씨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재즈피아니스트 가운데 한 사람이다. 대부분의 경우 반주자로서 따스하고 깊이 있는 얄미울 만큼 안정된 연주를 들려준다. 싱글 톤이 더할 수 없이 아름답다. 무대 바로 앞 테이블에 진을 치고 캘리포니아 메를로 술잔을 기울이며 그의 스테이지를 즐겼다. 하지만 개인적인 느낌을 솔직히 말해도 된다면, 사실 그날 밤 그의 연주는 그다지 열정적이라고 할 수 없었다.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직 밤도 그리 깊지 않은 시간이라서 별로 내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결코 나쁜 연주는 아니었지만 우리의 마음을 다른 장소로 띄워 보낼 만한 뭔가가 부족했다.

 

마법 같은 번뜩임이보이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원래 이렇지 않았는데, 아마 조금 있으면 틀림없이 제 실력이 나올 거야'라고 기대하며 연주를 듣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기대만큼 흥이 오르지 않았다. 스테이지가 점점 끝에 가까워지면서 '아, 이대로 끝나지 말았으면 좋겠는데'라는 초조함도 점점 강해졌다. 그날 밤 그의 연주를 기억하기 위한 실마리 같은 것을 나는 얻고 싶었다. 이대로라면 어중간한 인상만 남는다.   

 

어쩌면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토미 플래너건의 연주를 라이브로 들을 기회는 앞으로 두 번 다시없을지도 모르는 것이다(실제로 없었다). 나는 그때 문득 이렇게 생각했다. '만일 지금 토미 플래너건에게 두 곡을 신청할 권리가 내게 주어진다면 어떤 곡을 선택할까'라고. 잠시 생각을 굴린 끝에 선택한 것은 '바르바도스'와 '스타 크로스트 러버스', 두 곡이었다.

 

'바르바도스'는 찰리 파커의 곡, '스타 크로스트 러버스'는 듀크 엘링턴의 곡이다. 재즈에 대해 그리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잠깐 설명하자면, 둘 다 대중적인 곡은 아니다. 이 곡들이 연주될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바르바도스'는 어쩌다 귀에 들어오는 일도 있지만 찰리 파커가 남긴 작품들 중에서는 오히려 밋밋한 편이고, 더구나 '스타 크로스트 러버스'는 "그런 건 들어본 적도 없다”는 사람이 대부분 아닐까. 한마디로, 내가 하려는 말은 그게 상당히 '수수한' 선곡이었다는 것이다.

 

 

재즈 피아니스트 - 토미 플래니건

 

 

가공의 신청곡으로 이 '수수한' 두 곡을 선택한 것은 물론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토미 플래너건은 과거에 그 두 곡에 대해 매우 인상적인 연주 녹음을 남겼다. '바르바도스'는 J.J. 존슨 밴드의 피아니스트로서 <Dial J.J.5>(1957년 녹음)라는 앨범에, '스타 크로스트 러버스’는 페퍼 애덤스와 주트 심스의 쌍두 퀸텟의 일원으로서 <Encounter!>(1968년 녹음)라는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토미 플래너건은 그 기나긴 연주 경력 동안에 반주자로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곡을 연주하고 녹음했지만, 나는 특히 그 두 곡에 나오는 그의 짧지만 지적이고 깔끔한 솔로를 좋아해서 오랜 세월 즐겨 들어왔다. 그래서 그 두 곡을 지금 눈앞에서 실제로 들을 수 있다면 더 말할 것 없이 좋을 텐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가 무대에서 내 테이블로 곧장 다가와 “이봐, 당신, 아까부터 보고 있자니 뭔가 듣고 싶은 곡이 있는 것 같아. 원한다면 두 곡쯤, 제목을 말해봐"라고 해주는 일은 없으려나, 혼자 생각하며 지그시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물론 그것이 이루어질 리 없는 망상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하지만 플래너건 씨는 스테이지의 마지막에 아무 말도 없이, 이쪽을 한 번 쓰윽 쳐다보는 일도 없이, 그 두 곡을 연달아 연주해주었다! 처음에는 발라드 '스타 크로스트 러버스'를, 그리고 이어서 빠른 템포의 '바르바도스'를, 나는 와인 잔을 손에 든 채 모든 할 말을 잃었다. 재즈 팬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저 하늘의 별만큼 수많은 재즈곡 중에서 스테이지 마지막에 이 두 곡을 연달아 연주해 줄 확률이라고는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것이다. 그리고-이것이 이 이야기의 가장 큰 포인트인데- 그것은 실로 멋지고 훌륭한 연주였다.

 

 

<우연 여행자>의 스토리는 총 3건이 나옵니다. 여러분들이 직접 찾아서 한 번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책을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리고 추천해 드리고자 하는 취지의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저작권은 비체출판사에 있습니다.

 

 

 

도쿄 기담집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5권. 평범한 등장인물들이 여느 날과 같은 일상에서 맞닥뜨린 트릿한 순간 혹은 빛과 온기가 결락된 틈에서 포착해낸 불가사의하면서도 기묘하고, 있을 것 같지 않은 이

www.aladin.co.kr

 

 

반응형